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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r 25. 2024

엄마는 육아에 재능이 없어요

십팔세 아들의 충격선언

종종 고2 큰아들과 시덥잖게 같이 논다. 침대에서 뒹굴대며 서로의 핸드폰으로 보던 영상을 보여주고 낄낄대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말장난으로 놀려먹기도 하고,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가 맞다고 우겨대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 서로의 몸을 조롱하기도 한다. 억센 아들의 종아리털을 쓸어대며 빳빳한 빗자루아니냐고 놀리면, 아들은 엄마의 두툼하고 출렁이는 뱃살을 흔들며 슬라임이 붙었다고 대꾸하는 식이다. 이렇게 사이좋고 정겹게 놀기만 하면 다행인데, 가끔 서로 선을 넘을 때가 있다.


오늘은 아들의 결혼이 이야기의 주제였다. 국제결혼 커플 유튜브를 자주 보는 남편이 자녀가 국제결혼을 해도 자신은 좋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미식가가 되어 자신의 식탐을 충족시키는 로망을 지닌 아들 녀석이 외국에 나가서 맛난 음식 먹으며 지내는 것도 좋으니 타국 여인과 결혼해야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쯤에서 갑분 개그를 다큐로 받아쳐줘야한다.


"음, 그것도 좋지만, 엄마는 이왕이면 서로의 문화를 나눌 수 있게 한국 사람이랑 결혼하면 좋겠어."

"진짜? 정말?"

"어차피 너 결혼 못할거 같은데 뭐."

"우씨, 아니거든. 할 수 있는데 안 할거거든."


근거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아들에게 아픈 현실을 일깨워 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부족하고 우선적으로 선택을 받기에는 네 재력과 외모 뭐 하나 우수하지 않다, 정신차려라, 라고 뱉으려고 했는데 아들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암튼, 결혼을 해도 애는 안 낳을거야."

"어, 왜? 물론 네 인생이고 네 선택이니까, 엄마는 상관없긴 한데, 이왕이면 자식은 낳아라. 엄마가 키워줄게. 엄마는 딸 한 번 키워보고 싶단말야."

"그래서 안된다는거야. 엄마는 육아에 재능이 없어."


뭐시라? 십팔년 동안 고이 키워준 엄마에게 지금 무어라 나불대는것이냐? 무엄한 발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들을 쳐다보았다. 이상기류를 눈치채지 못한 눈치없는 아들이 한 삽 더 떴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좀 별로였어."

 

기어코...험한 것이 튀어나왔다.


"야! 너는 무슨 말을 해도! 네가 어릴 때 사고치고 말썽부리고, 어, 말 안 듣고 하던건 생각못하고! 혼내고 야단치고 좀 때리고 뭐 그런 것 가지고 몇 년을 울궈먹냐!"


엄마의 급발진과 정색을 보고 드디어 아들이 위기상황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챘으나 이미 늦었다. 엄마는 저 혼자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아빠는 너네 어릴 때 어쩌고 저쩌고, 너는 말이지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엄마가 우짜고 저짜고......


아들한테 육아에 재능이 없다는 팩트폭격을 당한 엄마가 대한민국에, 아니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  억울하고 서러워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야이 십팔세야!!!"


두고보자 십팔세! 너는 오늘 저녁 밥 없다! 눈을 세모로 치뜨며 씩씩대자 그제사 아들의 태도가 바꼈다.

"아이 참, 옛날에 그랬다는거지, 옛날에. 지금은 안 그러니까 괜찮아요 엄마."

어디서 엄마를 들었다놨다하려고. 에라이! 등짝을 한 대 후려치려고 하는데 침대밖을 빠져나가 거실로 도망을 친다. 100키로도 넘는 녀석이 어찌 재빠른지. 아무래도 올 한해 저 아들의 나이를 여러 번 부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미안하다 아들아, 엄마가 네게 잘못했던 것들 엄마가 왜 모르겠니. 항상 후회하고 미안해한다. 엄마도 서툴고 부족했던거 잘 알아. 그래서 오래도록 아파했고, 힘들었어. 그리고 그만큼 네가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 아들아.......그러니 이런 사진 한 장쯤 올려도 이해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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