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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y 27. 2024

요즘 일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경기도 서남부 작은 도시, 넓은 공장지대가 있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으며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도 많은 곳이다. 우리 학교에는 이슬람계학생도 있고, 부모님중 한 분이 외국인인 아이도 있으며, 조선족이거나 중국인이라서 외모로는 전혀 구분이 안되는 아이들도 많다. 옆 학교에는 학급 전원 중국아이들만 있고,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다. 


그렇다보니 시나 교육청에서도 다문화 학생을 위한 여러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가정통신문이나 교재의 다국어번역지원이나 다문화연구회 등의 연구활동 지원 등은 물론이고 교사의 한국어 교수능력 향상을 위한 연수, 다문화학생지도를 위한 외국어 연수가 도교육청 차원에서 마련되어 있다. 경기도국제연어교육원에서도 교사들이 각 언어권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베트남어,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나는 그 중 일본어 연수를 신청해서 듣고 있다. 작년에는 기초과정을 끝냈고, 올해 심화과정이 개설된다는 공문을 보고 기다렸다가 1기로 신청했다. 기초과정에서는 히라가나부터 시작하여 일본어의 기초적인 문법과 문형을 배웠고, 이번 연수에서는 형용사와 동사의 활용과 수업장면에서 필요한 어휘들, 실제 상담과 학교생활 안내를 설정한 대화 등을 2시간 씩 2주간 배우고 있다. 사실 지금 우리 반에 일본인학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만날 확률도 높지 않지만 젊었을 때 조금이라도 익혔던 언어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배우는 마음으로 듣고 있다. 

일본어 연수를 듣는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어쨌거나 외국어를 공부하다니 대단하네요 하는 반응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할거면 영어를 하지 왜 일본어를 하냐는 반응이다. 두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하나다. 영어를 못해서 일본어를 해요. 학생시절부터 영어를 배웠지만 능숙하게 구사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좌절감을 크게 느꼈기 때문에 차라리 새로운 언어를 접해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영어보다는 일본어가 쉽고 편하니까. 거기에 한국인이 언어로서 접근할 때 영어보다 일어가 친숙하기 때문인 점도 일정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세계 어느 곳을 가거나 통용될 수 있는 영어와 달리 일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영어와 비교하면 별다른 이점이 없다. 나도 안다. 일본으로 유학갈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살 것도 아닌데 여기서 일본어를 써먹을 일이 있을까? 


사실 작년에는 스페인어 온라인 강의도 신청했었다. 별 생각없이 가벼운 흥미로 시작했는데 완전 오판이었다. 우선 영어나 일본어와 달리 처음 들어보는 발음을 내 조음기관으로 만들어야하는 게 너무어려웠다. 영상을 따라 반복하며 따라 읽어야하는데 내 뇌와 혀는 서로 삐걱거리면서 불협화음만 만들어냈다. 어찌저찌 입밖으로 소리내 보았지만, 말하면 말할 수록 혀가 꼬이기만 했다. 너무 어색하고 어려워 결국 포기했지만 하나의 개념을 표현하는 전혀 다른 낱말을 입안에서 굴려보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자극이고 도전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낯선 문자와 말을 통해 이전과 다른 관념체계를 만난다는 것이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내 사고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식의 무거운 의미는 잘 모르겠다. 그저 다른 언어로 나를 설명할때면 다른 색으로 나를 칠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가슴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면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옷을 입고 다른 공간에 서 있는 느낌. 이렇게 말하면 꽤나 잘 하는 사람 같지만, 사실 너댓살 수준의 어휘도 못되고 그 정도 듣기도 말하기도 못한다. 그래도 요즘은 한동안 안듣던 J-POP을 다시 듣고 영상으로 일본 영화나 드라마 클립도 찾아 보고 있다. 일본어라는 낯선 언어가 내 안의 무언가를 조금씩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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