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Jun 29. 2024

삼겹살 집에서 2

기울어진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익으며 기름이 흘러내렸다. 불판 아래쪽에 고인 기름에 김치가 볶아지며 특유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명희가 상추위에 잘 볶아진 김치와 고기를 한 점 올려 쌈을 싸서 대용에게 건넸다.


 “여기에 고추냉이 한 숟가락 넣어야 진짜 쌈인데. 오늘은 봐줬다. 자요, 먹어요.”     


 고추냉이 쌈은 명희와 대용이 삼겹살을 먹을 때마다 꺼내는 작은 아들 이야기다. 작은 아들 수영이가 초등학교 졸업한 날도 바로 이 가게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이른 저녁이었다. 


 “6년 동안 학교 다니느라 고생했으니까, 엄마가 쌈 한 번 싸 줘야지.” 


 명희는 야무지게 쌈을 싸서는 아이 입에 넣어주었다. 이렇게 안 하면 수영은 밥과 고기만 먹었다. 명희는 형과 달리 먹는 데 별 관심이 없는 수영이를 먹이는 일에 유난히 정성이었다. 세 번째로 쌈을 싸주려 하니 아이가 귀찮은 티를 냈다. “엄마, 그만. 나 콜라 마시잖아. 이제 그만 싸줘”, “얘는, 이거 까지만 먹고 마셔. 다 먹은 다음에 마시라니까.” 그만 먹겠다는 아이와 더 먹이겠다는 엄마의 싸움에서 승자는 언제나 아이였다. 아이 주려던 쌈을 자기 입에 넣고 씹는데, 수영이 스스로 상추에 고기를 얹는 게 보였다. 채소를 잘 안 먹는 아이가 웬일로 쌈을 다 싸먹네 싶어 쳐다보는데, 상추 안에 고추냉이를 듬뿍 넣는 게 보였다. 


 “야, 이수영!”


 엄마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재빨리 수영이 한 손가락을 들어 입술 앞에 가져갔다. 그리고는 헤실거리며 아빠 입에 쌈을 내밀었다.


 “아빠, 초등학교 졸업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하세요!”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애교가 감격스러워서 대용은 냉큼 입으로 쌈을 받았다. 싱글거리며 씹던 대용이 갑자기 신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수영의 웃음소리가 먼저 터지고 이어 대용의 기침소리가 쏟아졌다. 공범이 되어버린 명희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리둥절하던 신호도 곧 상황을 알아챘다. “졸업선물로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용이 콜록거렸다. 


 “와, 이수영 선 넘는 거 봐라. 그래도 너니까 아빠가 웃고 넘어갔지, 내가 이런 장난쳤으면 아빠는 나한테 화냈을 걸?”


신호가 한 마디하며 수영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무슨 말이야, 괜한 소리. 너랑 수영이랑 다를 게 뭐 있다고 그래. 수영이 너 다음에 또 그러면 혼난다. 아빠 괴로워하잖아.”


 목소리는 제법 엄했지만 명희의 눈꼬리는 아래로 휘어져 있었다. 이후로 대용은 삼겹살 먹을 때 절대로 고추냉이를 곁들이지 않았다.         

 

 “그때 자기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요? 난 자기가 수영이한테 화낼까봐 살짝 겁먹었었는데.”


 “애들 장난에 무슨 화를 내나. 그냥 웃고 넘어가는 거지.”


 “당신이 그런 식이니까 수영이가 자기 맘대로지. 혼낼 때는 혼냈어야지. 걔 자기 맘대로 입대한 것도 그렇잖아.”           


 지난 봄, 명희와 대용 부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은아들 수영이가 자진 입대를 했다. 한동안 명희는 밥도 잘 먹지 못했다. 매일같이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이 가입한 포털사이트 카페와 밴드를 들락거리며 영이 걱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신병훈련을 마치고 철원 쪽으로 자대배치 받으면서 걱정은 더 커졌다. 여름이 다가오고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되는데 전혀 냉방을 하지 않으려 했다. 대용이 에어컨을 켜면 재빠르게 달려와 리모컨을 뺏어갔다. 아들이 더운 데서 고생하는데 부모가 돼가지고 어떻게 시원한 바닥에 누울 수 있겠느냐며 대용을 비난했다. “요즘 내무반 냉방 얼마나 잘 되는데, 그리고 우리는 침대서 자잖아.” 이 한 마디를 하고 대용은 일주일 동안 혼자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때 경험으로 대용은 지금이 조심해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볶음밥 먹을 거지? 내가 주문할게.” 테이블에 붙은 벨을 누르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용이 말했다.     

      

 대용은 주문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오른쪽 골목에 있는 공용 주차장 쪽으로 들어서며 대용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타들어가는 담배 끝의 붉은 색이 선명하게 빛났다. 드문드문 주차되어있는 차를 지나 휀스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비뚜름하게 놓인 빈 소스 통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휀스에 살짝 기대 고개를 드니 어두운 하늘에 살이 오르기 시작한 반달이 대용의 눈에 들어왔다. 


엊그제 초승달이었는데 벌써 반달이네. 이러다 또 금방 보름달 뜨겠지. 대용은 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천천히 반복해서 숨을 들이쉬고 연기를 뿜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중에 아직까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대용 혼자였다. 40년 넘게 흡연자로 살면서 후회한 적은 없었는데, 최근에 진작 끊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뜬금없이 명희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십 대 아들도 피우지 않는 담배를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가정주부가 굳이 피우겠다니. 남들은 건강을 생각해서 금연을 결심하는 나이에 흡연자가 되어버린 명희가 대용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어서 내가 담배 가지고 눈치 보면서 살아야 되나? 그냥 못 해 본 거 해 보겠다는 거야. 젊은 애들만 피우란 법 있나.” 


그렇게 말하며 명희는 대용이 담배 피우러 나갈 때마다 같이 집을 나섰다. 담배를 넣을 자그만 전용 파우치와 라이터까지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은은한 광택이 도는 노란빛에 형광색 단추가 달린 사각 파우치였다. 그래도 대낮에 아파트 안에서 피우기는 민망했는지 밤에만, 그것도 집에서 좀 떨어진 아파트 텃밭까지 가서야 피웠다. 그 바람에 대용까지 매일 조금 먼 밤 산책을 다녀야 했다.        

  

 “같이 피워야지, 치사하게 혼자 나가서 피워?”


 어느새 따라 나온 명희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명희는 자신의 담배 파우치에서 얇고 긴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었다. “여보, 나는 말이야, 당신이 내 담배에 불 붙여주면 설렌다. 그리고 첫 모금 빨아들일 때 나는 종이 타는 소리가 정말 좋더라. 그 소리 들으려고 담배 피우는 거 같아.” 자연스럽게 명희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며 대용이 대꾸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담배 못 끊는데, 큰일 났네.” 


 “환갑까지만 피울게. 그래봐야 5년 밖에 못 피네.”      


명희는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대용의 손을 잡았다. 둘은 나란히 손을 잡고 한 손으로 서로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느긋하게 한 대를 더 태우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어두운 주차장에 연한 레몬향이 퍼져나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솜씨 좋은 아르바이트생이 맛깔스럽게 밥을 볶아두었다. 깨끗해진 불판 위에 하트모양으로 모아진 볶음밥은 조금 전까지 부르게 고기를 먹었음에도 입맛을 돌게 했다. 비워진 그릇과 구겨진 냅킨도 치워져서 테이블은 처음 왔을 때보다 더 깔끔해진 상태였다. “안주도 새로 생겼겠다, 한 잔 더 해야겠네.” 명희가 웃으며 맥주를 주문했다.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 사이에 옆 테이블 손님이 바뀌어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던 젊은 부부 대신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중년의 여자가 함께 고기를 굽고 있었다. 어딘가 닮은 인상에 다정하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누가 봐도 모녀 사이 같았다. 하긴 애들 재울 시간이 넘긴 했네. 가자마자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느라 바쁘겠지. 남편도 같이 씻기려나. 볶음밥을 한 숟갈 떠먹으며 명희는 두 아이를 씻기는 젊은 부부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신호와 수영이를 씻기던 때를 떠올렸다.       


 아이들이 어릴 때 명희에게 목욕은 경건한 의식과도 같았다. 좁은 욕실에서 낑낑대며 아이를 씻기던 초보 부모 시절부터 때수건으로 때를 밀어주던 시절까지 한결 같았다. 신생아 때는 세면대에 물을 받아 아이를 담그면 딱 알맞았다. 눈에 거품이 들어갈까 조심조심 씻기느라 산후조리하던 허리에 무리가 가기도 했다. 그때는 겨우 팔뚝만한 아이를 눕혀서 씻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 최고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 같았다. 조금 더 커서는 욕조에 물을 받아 씻겼다. 추울까 봐 미리 욕실 온도를 높여놓고 들어가면 안경에 김이 하얗게 서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씻기고 수건에 감싸서 나오면 땀에 젖은 건지, 습기에 젖은 건지 옷이 다 젖어있었다. 허리에 힘이 생기고 스스로 앉을 수 있게 되면서 잠깐 자리를 뜰 수 있게 됐지만 얕은 물에서도 익사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불안해했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둘이 같이 욕조에서 한참씩 물놀이를 했다. 입욕제나 거품비누를 풀어주면 한 시간 씩 놀아서 그 시간이 명희의 휴식시간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씻겨 나오면 바닥에 큰 수건을 펼쳐 놓고 아이를 눕힌 후 온 몸에 마사지를 해주곤 했다. 갓 목욕을 마친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이의 맨살에 손바닥에 듬뿍 짜낸 베이비 오일과 로션을 이마 끝부터 발가락 하나하나까지 발라주었다. 맨들하고 보송한 이마와 뺨을 지나 살이 접히는 동그란 어깨와 주름 하나 없는 무르팍을 만질 때면 세상에 가장 순수한 무엇의 실체를 목격하는 것 같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버둥거리는 발을 잡아 팽이버섯 모양의 발가락과 젤리처럼 말랑한 뒤꿈치를 만질 때면 한 번씩 입에 넣고 세게 깨물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민들레 홀씨보다 더 가볍게 움직이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주고 깨끗하게 빨아놓은 새 옷을 입히면 그 어떤 업무나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보다도 큰 보람이 차오르곤 했다. 그렇게 씻기고 입히던 아이가 조금씩 자라 혼자 씻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몸의 변화를 끝내고 어느새 집을 떠났다. 

     

 “술잔이 비었는데 그만 마시려고?”


 대용이 건네는 말에 명희는 아이들 목욕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 아니야. 더 마실 거야. 한 잔 더 줘요.” 


 잘 달궈진 돼지기름에 볶아진 볶음밥은 익은 김치와 아삭한 콩나물, 김 가루까지 들어가 전혀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고소했다. 한쪽 볼이 불룩해진 대용이 우물거리며 대꾸한 뒤로 둘은 말없이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곧 여기저기서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 불판 위에 올라간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소리들도 차올랐다. 작은 삼겹살집을 가득 메운 소리들은 마구잡이로 뒤엉키다 맹렬히 돌아가는 환풍기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명희와 대용은 아무 소리도 보태지 않고 각자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조용히 자기 잔을 비워 나갔다.            


 천천히 남은 술을 다 마시고 마지막 한 숟갈까지 먹었을 때, 명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이라고 의식하지 못하는, 그저 몸에 베인 습관 같은 한숨이었다. 맞은편에서 물티슈를 손을 닦은 대용이 말했다.


“그만 갈까?”


“그래요, 갑시다. 우리도 씻고 자야지.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오고.”     


 겉옷을 챙겨 일어서는데 자연스레 옆자리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둘은 몸을 앞으로 숙여가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왜 엄마와 딸은 매일 보면서도 저렇게 할 이야기들이 쏟아질까? 명희는 모녀의 뒤쪽으로 돌아서 카운터로 향했다. 지나치며 바라본 두 모녀의 테이블 위에는 아직도 굽지 않은 고기가 남아있었다. 여자들은 밥을 천천히 먹지. 카드를 내미는 명희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명희가 화장실에 가고 잠시 뒤, 대용은 휴대폰을 꺼냈다. 통화목록을 몇 번 건드리다가 메시지 창을 띄웠다. ‘잘 지내니?’ 문자를 입력하다 곧 지워버렸다. ‘밥은 먹었니? 아빠는 삼겹살을......’여기까지 쓰다가 또 지우더니 휴대폰을 꺼버렸다. 도로 주머니에 넣고는 평소 습관대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밥 잘 먹고 다녀라, 날이 따뜻해지긴 했어도 옷 잘 챙겨 입어라, 언제 올 수 있니?’ 머릿속에서는 잘 나오는 문장들이 손가락으로 만들 때면 이상하게 자꾸 무너졌다. 대용은 팔짱을 풀고 다시 휴대폰을 꺼내 노란색 채팅창을 열었다. 큰아들이라고 쓰여진 창에 ‘용돈은?’이라고 쓰고 메시지를 전송했다.      


 “가요, 계산했어.”     


 화장실에서 돌아온 명희가 대용의 어깨를 쳤다. 대용은 천천히 일어났다. 오랜 시간 기름이 튄 가게 바닥은 조금 미끄러웠다. 의자를 끌어당겨 앉을 때는 잘 움직여서 편하지만, 화장실 갈 때는 넘어질까 조심해야할 정도였다. 열기 가득한 삽겹살 집과 달리 바깥은 쌀쌀했다. 입춘이 지났다고 해도 아직은 공기 중에 시린 기운이 담겨있었다. 명희는 목까지 패딩 지퍼를 올린 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두꺼운 겨울옷들은 다음 주에나 빨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파트 입구에 목줄을 길게 잡고 개를 안고 있는 주민들이 두엇 보였다. 밤 산책을 시키다 만나서 서로의 반려견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우리도 개 키워볼까?” 갑자기 생각 난 듯 무심한 목소리로 대용이 명희에게 물었다. 평소에 명희가 개를 키워보자는 얘기를 꺼내면 털이며 똥이며 싫은 것만 꼽아대며 반대하던 대용이었다. “난데없이?” 어쩐 일인가 싶어 명희가 얼른 대용의 손을 잡았다. 대용이 헛기침을 했다. “아니, 같이 밤에 산책하면 좋을 것 같아서....... .”      


 개 이야기에 명희가 반색하자 조금 민망했는지 대용이 재빠르게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뒤따라 들어서며 어떤 개가 좋으냐고 물어보는 명희의 얼굴은 알코올 때문인지 발긋해져 있었다. 몸을 붙이며 채근하는 명희를 살짝 밀어내는 동안 대용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작게 몸을 떨었다.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노란 불빛이 깜빡거리다 꺼졌지만 대용은 아직 알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겹살 집에서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