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은 돼지집 가서 삼겹살 먹고 올까?”
이미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배고프다며 투덜댔어도 진작 투덜댔을 시간인데 대용은 조용히 방에서 유튜브만 보고 있었다. 명희는 아예 옷을 다 갈아입고 대용의 방문을 열었다.
“옷 입어요. 나가서 먹고 오자.”
명희는 요즘 들어 부쩍 집안일이 하기 싫었다. 원래도 요리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요 몇 년 사이는 부엌에 서 있는 것도 귀찮고 버거웠다. 음식을 해서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 아무런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외식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빵을 먹었다. 차려먹는 건 하루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 밥 때가 돌아오고 허기가 진다는 것이 지겨웠다. 먹어야 사는 인생도, 먹여야 사는 인생도 별다를 바 없었다. 차라리 저녁을 안 먹고 일찍 잠드는 게 낫다 싶었다. 늦게 일어나면 아침 한 끼를 안 차려도 되니 늦잠 자는 걸 좋아했다.
오늘도 11시 반이 넘어 일어났다. 오후 2시가 지나서야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터라 크게 출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8시가 가까워오자 슬슬 저녁밥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느릿느릿 냉동실을 뒤적거리다가 녹이는 것도 번거로워 차라리 나가서 먹는 게 낫다 싶었다. 그런 명희 속내를 잘 아는 터라 대용도 군말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희는 회색 트레이닝 팬츠에 검정 후드 패딩을 걸치고 핸드폰과 카드를 챙겼다. 명희가 입는 옷들은 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때 입던 옷이다. 그래서 거의 다 회색 아니면 검정색이다. 간혹 흰색과 파란색 옷도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선명한 노랑이나 분홍빛이 도는 화사한 옷들을 입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집에 있는 멀쩡한 옷을 버리기 아까워 결국 늘상 아들의 옷을 입었다. 오늘도 위아래 다 아들의 옷을 입고 나서며 대용을 재촉했다.
“휴대폰은 놓고 갈까?”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으며 대용이 말했다.
“어차피 연락 올 곳도 없는데 뭐 하러 가지고 나가, 귀찮게.”
그렇지, 놓고 가도 상관은 없지. 상관은 없는데 그냥 그러네. 대용은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패딩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고 방문을 닫았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하나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한파라며 재난문자까지 오던데 별로 안 춥네, 주말에 풀린다고 했어, 이 정도 추위면 겨울도 아니지 따위의 날씨 얘기를 주고받으며 단지 초입에 있는 상가로 향했다.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고 10년이 지나는 동안 단지 앞 상가에 무수히 많은 가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도 더러 있었지만 대개는 1, 2년 장사하면 어느새 업종이 바뀌어있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남은 가게들로 자그마한 상권이 꾸려졌다. 명희와 대용이 자주 가는 삼겹살집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가장 확실히 자리 잡은 집이었다. 생삼겹, 냉동삼겹, 대패삼겹 등 삼겹살 전문에 다른 고깃집보다 술값이 저렴해서 개업 초부터 인기가 많았다. 5층짜리 건물 구석지 1층에 위치해 내부는 비뚤어진 평행사변형 모양이지만 화장실과 셀프바bar까지 야무지게 갖춰놓았다. 냉면과 된장찌개 맛이 별로라는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밑반찬과 야채가 무한리필이라 술손님과 밥손님이 고루 찾는 로컬 맛집이 되었다.
대용이 담배를 한 대 태우는 사이 명희가 먼저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토요일 밤이지만 저녁으론 약간 늦은 시간이라 다행히 둘이 앉을 자리가 있었다. 곧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온 종업원이 밑반찬과 양념장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고, 명희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주문했다. 생삼겹 이인분에 계란찜, 소주와 맥주 한 병씩. 이 모든 과정이 정해진 안무대로 춤을 추는 무용수처럼 자연스럽고 막힘없었다. 잘 달궈진 불판에 생삼겹을 한 덩이씩 올리자 곧바로 치익거리며 연기가 올라왔다. 지글지글 기름이 녹고 고기가 익기 시작하자 그제야 대용이 들어왔다. 앉자마자 자연스레 집게를 집어든 대용이 고기를 뒤집는 사이 명희는 소주와 맥주를 섞고 거품이 오르게 잘 흔들었다. “자, 남편은 고기를 구우시오, 마누라는 먼저 한 잔 합니다.” 허기진 속에 알코올을 넣으니 한 모금인데도 술기운이 도는 게 느껴졌다. 명희는 다리를 앞으로 뻗으며 알콜이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지기를 잠시 기다렸다.
“아이고 맛나다. 역시 술은 밖에서 먹어야지.”
대용은 작게 잘라 네 면을 다 익힌 고기를 명희 앞으로 옮겨주었다.
“안주도 같이 먹어야지. 고사리는 조금 더 구워진 다음에.”
명희는 삼겹살 기름으로 달궈진 불판에 튀기듯이 구워먹는 고사리를 가장 좋아했다. 삼겹살보다 고사리를 더 많이 먹어대면서 돼지집이 아니라 고사리집이라고 이름을 바꿔야한다고 진지하게 사장님하고 농을 주고받기도 했다. 적당히 구워진 고기와 야채를 곁들여 크게 쌈을 싸서 오물거리며 먹었다. 텅 빈 위장에 술과 고기가 쌓이자 마음도 두둑하게 채워지는 것 같았다. 명이나물에 갈치속젓을 올려 두 번째 쌈을 입에 넣을 때였다.
“양파도 먹을 수 있어? 우리 해인이 많이 컸네?”
옆 테이블에서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기름에 잘 구워진 양파를 가위로 작게 잘라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남자 옆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아이가 태블릿으로 만화를 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두세 살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조그만 숟가락을 손에 쥐고 유아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옆에는 엄마가 고기와 채소를 잘라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뭐라고 계속 종알대는 게 보였지만 명희와 대용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젊은 부부는 아이들을 챙기면서도 서로를 바라보며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피곤해보였지만 또 그만큼 따스해 보였다.
“우리도 저랬던 때가 있었는데. 그지?”
앞으로 몸을 숙이며 명희가 작게 말했다. 그래도 저 집은 젊은 아빠가 다정도 하지. 두 애 중에 하나는 확실히 아빠가 챙기잖아? 작게 눈을 흘기며 명희가 말을 이었다. 다음에 나올 말을 짐작한 대용이 일어섰다.
“상추 더 갖고 올게”
이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는데도, 자신이 어릴 때 육아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명희의 타박과 푸념은 두더지잡기 게임기 속의 두더지처럼 기회만 되면 솟아올랐다. 그때는 자신도 서툰 아빠였다고 인정한다. 아이를 대하는 것도 돌보는 것도 낯설고 어려웠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서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조카들을 보면서 그제야 어린아이들이 예뻐 보였다. 두 아들이 어릴 때 더 많이 예뻐하고 더 자주 사랑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대용은 조용히 플라스틱 바구니에 채소와 추가반찬을 담았다.
대용이 채소를 챙기러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가게 문이 열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과 잘 꾸민 젊은 부부가 들어왔다.
“저기요, 여기 콜라 한 병 먼저 주세요.”
고객응대업무 담당자가 아닐까 싶게 명랑하고 높은 톤이었다. 바쁘게 콜라부터 주문한 가족은 명희를 지나쳐 뒤 쪽 자리에 앉았다. 애쓰지 않아도 여자의 힘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야! 핸드폰 그만 보라니까, 밥 먹으러 와서 잠깐을 못 기다리고 게임이야!” 짜증 섞인 엄마의 목소리에 이어 불만스런 아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막 변성기가 시작된 목소리였다. “하던 판만 마저 하고 끈다니까!”
술 한 모금 마시며 명희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아이는 부모 맞은 편에 앉아 원래부터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꼼짝 않고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은 절대로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명희는 자신의 아들들이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조그맣게 웃었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는 청소년기 남자아이가 대한민국에 있기는 할까 싶었다.
“밥 먹다 말고 왜 혼자 웃어?”
상추와 고사리를 챙겨 자리로 돌아온 대용이 명희를 보고 물었다.
“내 뒤에 앉은 남자애 보여? 콜라 마시면서 게임 하는. 이따 봐봐라, 엄마 아빠가 게임한다고 잔소리하지만 결국엔 고기 구워서 입에 넣어줄 걸? 우리 애들도 어릴 때 저랬지?”
“남의 아들 그만 보고 당신이나 드셔. 우리 애들은 저 정도는 아니었지. 그래도 게임보다 밥이 먼저였잖아. 100킬로가 그냥 만들어지나.”
어릴 때부터 먹성 좋았던 명희 큰아들은 고1 여름방학 때 이미 키가 178센티에 몸무게는 100킬로그램이 넘었다. 아주 큰 편은 아니어도 또래 중에 작은 덩치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싫어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친구와 노는 것보다 집에서 게임하는 걸 더 좋아했다. 여름방학이라고 하루 종일 노는 꼴이 보기 싫어 운동이나 하라고 집 근처 유도장에 데려간 것이 시작이었다. 태권도는 어린 애들이 많아서 싫다더니 유도는 첫 날부터 ‘재밌다’ 소리를 했다. 힘들다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험기간에도 안 빠지고 꾸준히 다녔다. 계절이 지나면서 차근차근 승급을 하더니 2학년이 되어서는 대회에도 나가고 단까지 땄다. 관장님과 사범님이 체대를 생각해보라고 권유하셔서 생각지도 못하게 체육관까지 등록해 체대입시를 준비했고, 유명한 대학은 아니지만 지방 사회체육과에 들어갔다.
“신호가 어릴 때는 우리가 이렇게 여유롭게 먹을 수가 없었지. 정신없이 구워서 바치느라.”
명희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호젓하고 편하게 먹는 지금이 좋다지만 가끔은 그렇게 챙기고 먹이던 아들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뒤늦게 공부하겠다며 방학에도 집에 오지 않고 혼자 지내는 아들이 기특하면서도 짠했다. “신호 데리고 식당에 가면 사장님들이 잘 먹는다고 더 먹으라고 서비스도 주시고 그랬던 생각이 나네. 산호랑 같이 다니면 듬직하고 좋은데.” 명희는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하고서 대용 앞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다음 주에는 반찬 좀 해서 한 번 내려갔다와야겠다. 명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용은 말없이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