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재방송중인 '전지적참견시점'이라는 티비프로그램을 잠깐 봤다. 방송인 이영자가 어머니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뤘다는 사연을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의 조문객을 받지 않고 엄마를 아는 사람들만 모여서 엄마를 추억하며 보내드렸다고한다. 이영자 정도 네임벨류를 지닌 연예인이라면 조문객도 어마어마할테고 조의금도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일것 같은데 그 모든 것보다 엄마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엄마를 추억하고 싶었다는 딸의 마음이 애틋하면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텔레비전 속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이영자를 보며 내가 죽은 다음 내 장례는 어떤 식으로 치뤄지려나 궁금해졌다. 내 장례라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써니 속의 한 장면 같이 극적인 이야기가 가득하진 않아도 나 다운 장례풍경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죽고 난 다음 내 유골을 담아두는 것도 싫고 49재나 제사도 필요없다. 빈소에 향을 피우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차라리 빈소 가득 좋아하는 꽃냄새가 풍기고 내가 즐겨듣던 음악이 흘러나오면 좋겠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굳이 검정옷을 입지 말고 웃으면서 찾아와서 차 한 잔,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면 더 좋겠다. 나를 잃고 슬퍼할 사람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잠깐 내 이야기 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난 뒤부터 나는 경조사 중에 경사慶事보다 조사弔事를 더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의 무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를 잃고 슬퍼할 가족들이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자리기를 또한 바란다. 무엇보다 내 가족들이 나 때문에 많이 슬퍼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지금을 잘 살아야겠지, 건강하게 몸을 관리하고 선한 마음으로 살다 가야겠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갈 지 모르는게 인생이라지만 그렇게 갈 수 있게 잘 준비하며 살아야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옆에 있는 큰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들, 있잖아, 엄마 장례를 치를 때는 국화나 백합처럼 하얀 꽃 말고 풍성하고 다양한 꽃으로 꾸며줘. 엄마는 작약을 제일 좋아해. 이왕이면 여러 색의 꽃들을 준비해도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곡들을 뽑아놓을테니까 틀어줘. 아니다, 아예 엄마랑 틈틈이 플레이리스트를 같이 만들자. 반복재생할 틈도 없을 지 몰라, 좋아하는 음악을 다 모아놓고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생각해줘.
여기까지 얘기하니 남편은 주책이라는 듯 펴다보고 아들은 어이없다는 듯 알았다면서 그만하라고 선을 그었다. 일단 살면서 더 생각해보고 추가할 거 있으면 알려줘야겠다.
작가 유시민은 어머니상을 치를때 일체 조의금을 받지 않고 자식들이 어머님의 생전 모습을 직접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어 조문객들에게 나누어 드렸다고한다. 어머니를 추모하는 작가다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품위있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고 싶은데, 일단 자식을 잘 키워야 가능하겠지. 그러려면 가는 날을 고민하기 전에 내 아들 밥부터 먹여야겠다. 아드님 배고프단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