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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Sep 26. 2024

드문드문 9월 일기

1.

아이들이 크면서 종종 남편이 내 옷과 아이 옷을 착각한다. 아들과 같이 입는 옷도 생기니 누구 옷인지 헷갈리 수도 있겠지만, 남편은 왜 작은 아들 팬티를 내 속옷장에 넣어두는걸까? 왜그러는지 어이가 없고 이해도 안가는데 이유를 물어보자니 답을 듣고 기분 나빠질까봐 못 물어보고있다.



2.

건강검진결과지를 받았다.

비만의심이라고 써있었다.

남편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의심이 아닐텐데?

퍽!   끝.



3.

늦은 밤, 노래를 한 곡 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맞춰져있던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맑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잠시라도...' 아주 오래 전 듣던 노래,  익히 알고 있는 노래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을 깊고 고요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마음에 다가왔고 읊조리는 것 같이 가만가만한 창법도 새삼 마음에 들었다. 가만히 따라 불러보았다. 자연스럽게 모든 가사가 떠올랐다. '홑이불 처럼 사각거리며..' 이 부분을 부르다 얇지만 단단하면서 까슬거리는 촉감, 살짝 차가우면서 바스락거리는 감촉이 떠올랐다. 홑이불이 사각거리는 어느 여름밤의 분위기도 같이. 요즘 젊은 세대들은 홑이불을 알려나? 이 것도 지나간 감성이되려나 싶었다. 마침 저녁에 베보자기의 느낌을 성깔있다고 묘사한 박완서 님 산문 한 구절을 읽어서 더 그랬던것 같다. 홑이불도, 베도, 요즘에는 잘 쓰지 않지만 그 정서는 잊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나이들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4.

도서관 강의를 듣고 나서니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도 없었고, 늦은 밤이고, 제법 내리는 비라 잠깐 고민했지만 버스 정류장까지 그냥 걸었다. 걸어가며 남편한테 전화했더니 버스정류장으로 나오겠다며 버스 탈 때 전화하란다. 비를 맞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버스에 타고내리는 사람이 없어 금방 집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신호등을 건너는 남편이 보여 반갑게 다가갔는데, 남편 손에 우산이 없다. 비오는 날 마중을 나왔으면 자기가 쓴 우산 말고 나에게 건내줄 우산을 하나 들고와야하는거 아닌가?


"뭐야, 왜 우산을 안 들고 왔어?"

남편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같이 쓰려고 그러지."


한 지붕 아래 퉁퉁한 두 어깨가 비좁다. 서로 바깥쪽 어깨는 비에 내주고 반쪽씩만 우산으로 가리고 걸었다.

"이게 뭐야, 누가 마중 오는데 우산을 하나만 가지고 와, 건 우산을 쓰는 것도 안 쓰는 것도 아니네."

웃으며 타박했더니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살 쪄서 그래. 나는 딱 좋아."


비오는날 먼지나게 맞는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깨달았다.

사진은 사실 큰아들과 작은아들


5.

오늘 급식으로 잡채가 나왔다. 잡채라니. 명절에 먹은 잡채를 한 줄로 이으면 부산까지도 닿겠다. 명절내내 물리게 먹은 잡채를 급식으로 또 만나니 지겨웠다. '잡채따위 쳐다도 안 볼테다.' 마음은 그랬지만 아이들에게 편식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조금만 담아 자리에 앉았다. 남길 수 없으니 한 입만 먹으려고 당면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응? 이럴수가. 탱글탱글한 당면에 간장양념이 완벽하게 배어있고, 후추와 참기름향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어설픈 채소따위 넣지 않고 양파와 버섯, 약간의 고기만으로 버무려 간결하고 담백하기까지하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한 번 더 잡채를 집어담으며 조금전의 교만을 반성했다.


6.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주 글만 보면 엄청 화목한 집인줄 알겠어."

브런치에 쓴 부모님 이사 이야기를 여동생이 읽었나보다.

"남동생이 내내 불평하고 투덜댄거랑, 엄마가 짜증낸 거, 내가 화내고 집에 간 얘기는 왜 안 써? 이러면 내가 식탁 위만 찍어서 인스타 올리면 잡지에 나오는 집 같네, 호텔같네 사람들이 감탄하는거랑 뭐가 달라? 아주 찬란한 순간만 써놓으셨어."

동생이 신나서 나를 여기저기 찔러댄다. 그러더니 협박까지 서슴지않는다.

"브런치에 내 지분이 상당한거 같은데, 뭐라도 좀 줘야하는거 아냐? 좀 내놔 봐."


브런치가 이렇게 무섭다.



7.

출근길에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아침에 정신을 깨우려면 아이스가 나을 것 같긴 한데 갑자기 낮아진 기온에 비염 증상으로 요며칠 계속 힘들어서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막 문을 연 듯한 저가프렌차이즈 카페에 알바생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동안 금방 커피가 나왔다. 달그락 거리는 얼음이 가득 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아, 저 따뜻한 커피 주문했는데..."


알바생이 마스크 너머로도 보일만큼 당황하며 내려놓은 커피를 잡으려하길래, 괜찮아요 그냥 마실게요라고 말하고 커피를 집어들었다. 차가운 감촉이 조금 걸렸지만 못 마실 정도는 아니기도 했고, 다시 만들 동안 기다리는 것도 번거로워 얼음을 가득 넣은 커피를 들고 학교로 향했다.


바뀐 커피를 그냥 마신 건 내가 무난하거나 친절해서가 아니다.  호구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오차라서 상관없었던 것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허용치가 넓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매우 좁다. 어느 분야에서는 허용치가 매우 넓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매우 좁은 경우도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교사의 허용치가 넓은 편이 교사나 아이들 모두에게 편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교사의 철학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은 엄격하고 좁게 적용해야한다. 확고한 울타리가 있어야 그 안에서 자율적이면서 원칙이 살아있는 생활이 가능하다.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교실안에서 나의 원칙은 무엇인지, 그 원칙이 아이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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