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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

by 피어라

매달리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매달리지 않아도 죽을 것 같았다. 양쪽에서 붙들고 있던 밧줄을 한 쪽이 놓았다고 나도 내던져야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나는 그가 던져버린 밧줄을 끝을 붙들고서 엉엉 울었다. 다시 팽팽해질리 없는 줄의 끝을 바라보며 감지도 못하고 통곡했다. 운명이라며, 신의 뜻이라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놓고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손에서 놓았구나, 너는.


또 하나의 사랑이 끝났다.


사랑이, 상대가 돌아섰다고 사라질 수 있는가?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데, 두 손으로 꽉 그러쥐고 있는데, 어떻게 밧줄을 내다 버릴까.


내가 뭘 해야하나 종일 생각했다. 우선은 그가 보고싶었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피하는 그를 만나야했다. 울고불고 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그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 집 근처 피씨방에서 밤을 넘기기도 했다. 불꺼진 베란다를 올려다보며 그의 여동생과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언니, 내가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미쳤나봐요. 우리 오빠가 백 번 잘못했어요. 어떡해요, 진짜 나쁜 놈이에요. 엄마도 속상해서 말도 못하고 드러누워있어요.”


첫 아이 백일 때도 만난 그의 여동생이 전화로 울었다.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울음과 어린 아가의 울음이 뒤섞이고 있었다. 긴 울음 끝에 그녀는 간신히 미안하다고, 자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해야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구차하게 매달리지 말고 얼른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친구도, 같이 욕해주는 친구도, 나보다 더 화 내주는 친구도 마지막은 다 똑같은 말을 했지. 나쁜 새끼, 그게 사람이냐. 놓아도 죽을 거 같고 잡아도 죽을 것 같은 내 마음을 나도 어쩌지 못해 대답대신 울음만 매달아 놓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쌓여있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작년 가을에는 발밑에서 바사삭 부서지는 쿠키같은 낙엽을 보며 나란히 웃었지. 손가락 하나하나 접어가며 맞잡은 손을 흔들었지.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밧줄같던 너와 나의 손가락.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주머니 속에서 혼자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동안 다시 입동이 되었다.


내가 잡고 있는 것이 사람인지, 밧줄인지 모르겠다. 버려버릴까, 이까짓 밧줄. 곱고 선명한 색실도 아니고 이슬 맺힌 아침 숲의 거미줄도 아닌데, 뭐하러 붙잡고 있을까. 줄다리기에나 어울릴 거칠고 투박한 밧줄이 걸을때마다 바닥에 쓸린다. 쌓인 낙엽 위로 허물벗은 뱀껍질 같은 밧줄이 힘없이 따라온다.

나는 아직도 밧줄을 손에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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