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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상 Oct 15. 2020

거북이 사장님은 잘 지내시죠? (2)

이십대 중반을 넘어가던 때, 나는 본격적으로 커피에 흥미를 느끼던 시기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시기에는 하루에 열시간이 넘도록 카페에 있어도 좋았고, 커피를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과 커피를 이야기하는게 행복했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다. 하지만 그 때의 느낌은 좀 달랐다. 계속 궁금증에 배가 고팠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어떤 정보라도 배가 아닌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던 시기였다. 커피를 하는 사람이라며 나를 소개하는 '바리스타' 라는 단어가 너무나 벅찼고 그렇게 카페인에 취해 늘 설레였던 시절이었다. 내 SNS와 생활은 자연스럽게 커피로 가득했고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거북이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형 나 커피 수업을 좀 해줘."


당시에 나는 카페를 운영하던 사장도 아니었고, 수업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도 아니었다. 몇 번 사람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었지만 내가 선생이라고 할 만큼 교육에 자신감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저 커피를 좋아하고 행복해 할 뿐이었던 나에게 뭘 믿고 거북이는 그런 제안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거북이는 당시에 이미 여의도의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서 꽤 바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한 발 앞서서 커피를 하고 있던 사람이라고 해도 될 일이었다. 그런 거북이가 나에게 수업을 부탁하다니. 우선 이유나 들어보자고 했다. 아 그렇겠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당시 거북이는 카페를 운영하고는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전문적으로 커피를 배울 시간을 가진적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커피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었고 채워지지 않는 어떤 궁금증이 늘 존재했다. 하지만 카페는 정신없이 바빴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커피 공부를 하기란 여간해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아,
여기서 잠깐 거북이의 성격을 알고 넘어가야 한다. 거북이는 그대로 거북이 같은 사람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가까운 곳에서 관찰한 결과 '거북이는 거북이'가 맞다.


거북이는 거북이다. 유유자적 느릿느릿하다가도 목표가 생기면 세게 물고 놓치지 않는 강한 턱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어디라도 물어 넣어두면 또 잘 살아갈 것 처럼 단단하게 보이지만 주변의 변화에 민감해서 쉽게 오염되고 상처받기도 한다. 느릿한듯 하지만 먹이를 물 때는 재빠르다. 별 생각없이 헤엄치는 것 같다가도 잠깐 한눈팔면 어항을 탈출하는 치밀함(?)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거북이는 거북이다. 유유자적 느릿하다가도 목표가 생기면 세게 물고 잘 놓지 않는 그야말로 반전매력을 가지고 있다. 평소 학교 생활을 할때도 거칠고 투박해보여도 내심 여리고 사람을 잘 챙겼다. 한번 정주면 꽤 오래 정을 쌓아가는 스타일이다. 무심하게 말하는 해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 다시 돌아와서, 그런 거북이에게 불을 지피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그 날도 어김없이 바쁜 점심러시가 지나고 중년의 한 남자가 거북이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와서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이게 바로 거북이 각성사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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