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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상 Apr 22. 2023

커피의 균일성. 그리고 허용 가능한 오차 범위의 기준

커피의 균일성. 그리고 허용 가능한 오차 범위의 기준

<13.>

커피를 만들다 보면 바리스타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또 듣는 단어가 바로 ‘균일성’이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작은 행동 차이와 그날의 컨디션 차이가 커피의 균일성을 흐트러지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곤 한다. 조금 과장하면 손님은 바리스타의 이 균일성에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산다는 의미일 수 있다.


커피가 참 많은 세상이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커피는 사방에 널려있고, 집 밖을 나서지 않아도 수십 곳의 카페가 배달을 통해 커피를 우리 집 문 앞까지 전달한다. 그럼에도 내가 만든 커피를 찾아주신다는 것은 어제와 그제, 그리고 지난주에 마셨던 그 커피맛이 오늘도 여전히 이어질 것이라는 ‘균일성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가까운 예로 에스프레소  추출 시 포터필터 안에 담기는 원두의 균일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아무리 맛있고 비싼 원두도 이 균일성을 잘 지키지 못하면 맛있는 커피가 되기 어려워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제만큼 맛있는 커피가 될 수 없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징 된 커피를 골고루 잘 펴주는 레벨링과 균일한 힘을 가하는 탬핑은 분쇄된 원두에 골고루 영향을 미쳐 좋은 커피맛을 균일하게 추출하도록 돕는다. 만약 이 과정에서 한쪽에 치우쳐서 원두가 도징 되거나 힘이 가해지면 채널링이 발생하고 만다.


이러한 균일성은 커피뿐 아니라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에게도 적용된다. 아, 바리스타의 실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실력은 당연히 좋아야 하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기복이 큰 바리스타는 매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어제의 가치관과 오늘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바리스타나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한 감정을 보이는 바리스타는 손님뿐 아니라 동료 바리스타에게도 그 신뢰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균일성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균일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우선 허용 가능한 오차의 범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결국 커피도,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태도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너무 기복이 크고 널뛰는 듯한 오차는 매력을 반감시키지만 허용가능한 선에서 움직이는 변화는 그 커피와 사람에게 매력을 더한다.


연애를 잘하는 친구들을 이야기할 때 흔히 밀당을 잘한다고 이야기한다. 바리스타도 어느 정도 당길지, 그리고 어느 정도 밀어낼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힘조절을 못하면 ‘허용 가능한 오차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허용 가능한 오차를 넘어가는 순간 매력은 반감이 된다. 신뢰와 불신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타이밍이 된다. 커피도 똑같다. 힘조절, 밀당의 범위를 찾아야 한다.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커피맛의 범위는 어디인지, 나의 바리스타로써, 그리고 주변의 동료로서 너무 기복 있는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항상 생각하고 그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게 커피의 균일성을 이해하는 시작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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