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개인적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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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흑인 여성이 있다. 그녀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남아프리카 빈민촌에서 똥통을 나르는 일을 한다. 꿈도 희망도 없고 주위에 있는 인간들은 모조리 그녀의 환경만큼이나 똥통에 어울리는 인성과 두뇌를 가졌다. 그리고 모조리 다 인종차별적이고 흑인 본인들도 그러한 세상에 그저 그렇듯 적응하며 살아간다. 이 책은 놈베코라는 이 여성이 긴 여행을 통해 핵폭탄을 떠안고 스웨덴을 거쳐 다시 남아프리카로 돌아와 스웨덴 대사가 되는 이야기다.
올해 요나손의 세 번째 책이다. 말했다시피 웃음을 주는 몇 안 되는 책이다. 역시나 캐릭터들의 워낙 독창적이어서 내내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적인 부분과 군주제, 공산주의 등 여러 이념도 등장인물들을 통해 재미있게 표현한다. 특히 남자 주인공 격인 홀예르 쌍둥이의 이야기는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서로 다른 성격과 능력에 신빙성을 높였다. 특히 넘버원 홀예르는 너무 입체적으로 멍청해서 실제 존재할지도 모를 무뇌함의 표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의 소설을 세권째 읽다 보니 어떻게 이 이야기를 창조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의 첫 번째 소설 창문 밖을 넘어선 100세 노인에서 보였던 치밀함이 이 소설에서는 그만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중반부 왠지 모르게 캐릭터들이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순간 요나손이 어떻게 소설을 완성하는지 창작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난 예술가이다. 결과물이 만들어진 창조자의 머릿속 과정은 내게 중요한 양식이다.
일단 이 모든 것은 가설이라는 점과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이라는 점을 미리 알린다. 첫 번째로 요나손은 주인공 캐릭터를 만든다. 누구보다 독특한 과거와 능력을 갖춘 캐릭터다. 그 주인공이 해결할 엉뚱하고 거대한 모험의 큰 줄기를 미리 그어 놓는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주인공과 어울리거나 결이 반대되는 조연 캐릭터를 10명 정도 만든다. 이들은 역사 속 인물이거나 일반인들에게 이미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는 유명인들과 권력자를 모델로 활용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환경 속에 그 조연들을 곳곳이 배치한다. 아직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글을 써 내려가며 이렇게 되면 재미있겠다는 유머 복선을 깔아둔다. 그리고 주인공과 사건과 조연들을 상상한다. 요나손은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이야기를 받아적은 뒤 이야기가 완성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제 다른 이성적 시선으로 글 뭉치들을 정리한다.
이 가설은 이 소설의 중반부 캐릭터들이 하릴없이 빈둥거리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캐릭터를 조종하는 창조자가 아니라 캐릭터들을 풀어놓고 지켜보며 기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창작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이는 문학 분야 뿐 아니라 예술, 과학, 일상 업무들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일이다. 뇌 속에 큰 덩어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위해 골머리 쓰지 않고 적당한 시선으로 지켜보면 해결책이 보이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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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안 풀리면 붙잡지 말고 놓아줘라. 당신 뇌(하드웨어)의 성능은 당신의 가진 지식(소프트웨어)보다 우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