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시작

그런 엄마가 있었다

by 조유리

할머니가 된 친정 엄마는 손주를 어떻게 돌볼지 전혀 몰랐다. 정말, 하나도 몰랐다.

내가 첫째를 낳은 직후 허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그럼 나가서 운동을 좀 하지 그러니.”


했다. 뭐, 서양식 산후조리법을 알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아이 낳고 섣불리 외출했다가 몸에 바람 들면 큰일 난다는 식의 한국 친정엄마들의 흔한 생각을, 엄마는 전혀 몰랐다.


첫째 아이를 낳은 직후 친정에 머물며 삼시 세끼를 얻어먹는 것 외에 아이를 돌보는 데 엄마의 도움을 받은 것은 별로 없었다. 2시간마다 깨는 아이를 새벽마다 달래고 젖 혹은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다시 재운 것은 나와 남편 그리고 친정아버지였다. 엄마는 저녁 6시만 넘어도 졸리다며 방으로 들어가 아침까지 자고 일어났다.


둘째 때는 집에서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 집에서 15분 거리에 살고 있던 친정 부모님이 수시로 드나들며 반찬을 갖다 주곤 했는데 어느 날 찾아온 엄마가 나 먹으라며 간장게장을 내놓았다. 도우미 아주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부모님이 돌아간 후에야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산모 이빨 다 나가라구 어디 간장 게장을…. 친정엄마 맞으유?”


나는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네, 맞아요. 이러니까 우리 엄마죠.




내가 초등 고학년 정도 되었을 무렵부터 엄마가 종종 털어놓던 인생담을 나는 솔직히 다 믿지 못했다. 특히

“너희를 낳자마자 이틀 만에 보따리 장사를 하러 나갔지 뭐야.”


라는 말은 내가 두 아이를 낳아본 다음에는 더 신화같이 들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그렇다고 허풍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결혼 후 한 달 만에 직장을 그만둔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장사 수완을 발휘했고 결국 우리 가계를 일으켰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엄마가 산후조리법을 잘 모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엄마, 아빠가 새벽부터 낮까지 도매시장에 옷을 팔러 나갔을 때 오빠와 나는 항상 둘이 남겨져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히 오빠와 나 둘 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아기 때였다. 어느 날 내가 냉동실에서 갓 꺼낸 스테인리스 얼음틀 바닥을 혀에 대며 찍찍 들러붙는 느낌을 즐기며 재밌어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꽝꽝 언 얼음틀이 내 입에 찰싹 달라붙어 떼어지지 않더니 오빠가 확 잡아당겨버리자 혀에 약간의 피를 남겼다. 피를 보고 당황한 오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색이 되어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온 엄마는 그저 피가 살짝 나기만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휴, 난 또 혀가 잘렸다는 줄 알고!”

엄마는 내가 두 아이를 낳고 돌보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종종 말했다.


“너 애들 키우는 걸 보면 한시도 눈을 못 떼겠는데, 나는 어떻게 너희 둘만 집에 두고 장사를 다녔는지 모르겠어. 근데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나.”

엄마가 손녀들을 돌보는 어설픔을 보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그렇게 강조 안 해도 믿을 만한 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의 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제대로 풀기도 전에 집 밖으로 뛰쳐나간 그 시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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