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엄마가 있었다
첫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잘 울었다. 나와 조금도 떨어지기 싫어하며 유치원에 갈 때도 매일 울었다. 아이를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 맡기고 출근을 해야 했던 나는 아침마다 반복되는 아이의 눈물이 참 싫었다.
친정엄마가 보따리 장사를 작은 양품점으로 키워냈을 때 그 가게에는 작은 삼각형 방이 있었다. 그 방에서 엄마가 나를 돌보다가 손님이 와서 잠깐 나가면 내가 그렇게도 울었다고 했다. 잠깐인데도 문을 쾅쾅 두드리며 시끄럽게 울어대니 옷을 보러 온 손님이 미안하다며 나가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찾아온 손님도 내쫓는 꼴이 된 엄마는 나를 부둥켜안고 엉엉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장사의 규모가 좀 더 커진 것이 새벽 도매시장이었다. 새벽에 깨서 불을 켜고 나갈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매달려 가지 말라고 엉엉 울어댄 것을 나도 기억한다. 집 밖으로 멀어지는 부모님을 쳐다보며 창을 부술듯 두드리고 소리 높여 울었다. 낮이 되어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면 나는
“엄마, 아빠, 새벽에 울어서 죄송해요.”
라고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에는 어김없이 창을 두드리며 통곡을 이어갔다.
나는 큰 아이를 낳고 딱 두 달을 쉰 뒤 친정에 (정확히는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고 한 달에 열흘 넘게 야근, 그것도 새벽에 들어오는 잡지 기자 일을 계속했었다. 그땐 남겨진 아이 마음보다는 나를 두고 장사를 나간 엄마의 마음에 더 많이 이입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눈물이 싫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런 엄마 마음도 몰라주는 아이의 눈물. 아이에게서 보이는 어린 내 모습, 그리고 그걸 바라봤을 엄마의 마음. 그 기억이 오버랩되어 괴롭고 내가 ‘뭐 한다고 이렇게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일을 나가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아이 돌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유치원에 등원할 때의 아이의 눈물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대물림되는 건 눈물의 유전자만은 아니다. 대를 이어 전달되는 기억은 인생의 선택에 어떻게든 영향을 끼친다. 행복한 기억도, 아픈 기억도 좋은 선택의 이유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