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없는 엄마의 세상
이게 나만의 문제일 수도, 감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 감정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가슴이 아픈 듯하다가도 ‘과연 내가 지금 가슴이 아파도 되나?’라며 자신에게 되묻는다. 순간적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는 내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 무엇일까, 내 감정이 '놓여야 하는 자리’는 어디일까 고민하는 적이 더 많다. 당위성과 논리성이 부여되지 않은 감정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감정이 언제나 제대로 이름 붙은 자리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감정과 논리가 대척점에 있다는 상식이 맞는 거라면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정말 궁금했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보며 어떤 감정을 ‘가져야 마땅한 것인지’ 누가 답을 해주었으면 했다. 또래 친구들도 만나고 재밌는 놀이도 하며 엄마와 있을 때와는 다른 즐거움을 느끼길 바랐지만 당장 눈앞에서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면 그게 다 아이를 떼어놓기 위한 핑계 같았다. 이 아이에 대한 걱정의 실체가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가늠이 안 되어 짜증이 났다.
어린 나를 두고 장사를 나갔던 엄마가 조언이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엄마는 ‘대체 나는 너희를 두고 어떻게 장사를 나갔다니?’하며 남 얘기처럼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그러던 엄마를 거꾸로 내가 떼어놓아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나는 엄마를 요양원에 맡기며 과연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 걸까. 전문적인 돌봄의 손길을 구하는 것이니 이건 엄마를 위한 것이다, 싶다가도 엄마 돌봄에 지쳐가는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 안심을 해야 하는 걸까.
띵, 띵, 띵!
요양원 원장으로부터 동영상 메시지가 왔다. 엄마가 노래를 부르거나, 윷놀이를 하며 재밌게 지낸다는 내용이겠지. 회사일로 미팅하러 가는 길이었기에 자세히 보지 않다가 미팅이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차분히 앉아 열어 본 영상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엄마가 아닌 다른 할머니 한 분이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다. 그분을 마주 보고, 문 앞에 엄마가 서있다. 지지대가 없으면 균형 잡고 서지도 못하는 엄마가 용변을 보는 그 할머니 앞에, 문과 벽을 잡고 서 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 순간, 그 할머니 머리를 휙 때린다. 휘청거릴 뻔하면 또 벽을 잡고, 그러다 또 한 번 때리고, 또 벽을 잡고 버틴다. 그 할머니의 머리를 쥐어뜯으려 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또 다른 영상. 소파 한쪽에 가만히 앉아있는 그 할머니 곁으로 저 멀리서 엄마가 보조기를 끌고 열심히 걸어온다. ‘왜 굳이 저렇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먼 거리에서, 너무나 열심히 걸어온다. 그러더니 그 할머니 바로 옆에 앉아서는 쿠션을 빼앗고 옷을 마구 잡아당긴다. 손으로 마음대로 안 되는지 옷 끝을 물어뜯으려고도 한다. 할머니는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 조금씩 피할 뿐이다. 두 영상을 보고 원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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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먼저, 시비를 거시는 건가요?”
“네, 대상이 되는 할머니는 인지 능력이 떨어지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당해도 가만히 계시는데 그래도 거동은 잘하시거든요. 어머님은 걸음이 힘드시잖아요. 저러다가 당하시는 할머니가 갑자기 밀치기라도 하면 어머님이 뒤로 꽈당 넘어지실 거예요. 매번 저희가 말렸다가 이번에는 보호자님에게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보면서 찍어두었어요.”
우리 식구 모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가장 큰 몰상식으로 알고 살아온 이들이었다. 원칙주의에다가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데 능하지 않고 가끔 속에 있는 독설을 그대로 날려서 우리를 불편해하는 이들은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 기억은 별로 없었다. 아프기 전 엄마야 말로 단연코 그랬다. 언제나 경우 밝고 사람 좋던 엄마가 왜 이런 병에 걸렸냐며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었다. 그랬던 내 엄마가, 이런 ‘가해자’ 역할을 하다니! 영상을 보자마자 피해의 대상이 된 할머니의 가족을 떠올렸다. 가족들이 알고 항의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하나. 갑자기 속수무책의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 센터는 왜 대책도 없이 나에게 이런 영상만 보내는 것인가. 원장의 메시지에는 어떻게 해결하자는 말은 전혀 없었다. 또다시 이전 두 번의 경험이 떠올랐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어머님이 저러세요.’ ‘다른 분들이 어머님을 싫어하세요.’라며 사실만 전달하고 그 후의 대책은 알아서 하라는 식. 엄마의 증상이 심해지니 이 곳의 태도도 똑같은 것일까?
나는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휴, 어떡하나. 왜 그러실까…. 자꾸 그 할머니 괴롭히면 식구들이 안 찾아올 거라고 그러심 어떨까요? 하긴 말 들을 엄마가 아니죠?”
“전혀 안 먹힐 거예요. 어머님 고집 아시잖아요.”
나는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버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 왜 이렇게 다 어려워? 뭐가 그렇게 포기가 안 되는 거야? 도대체 우리가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해?’
이런 원망 반대편에 ‘얼마나 갑갑하면 저럴까’라는 가여운 마음도 움텄다. 좁은 요양원에서 나가고 싶고 활동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라면, 엄마는 아직 너무도 건강한 것이었다.
다음날 요양원을 찾아갔다. 나를 본 엄마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어딘지 모를 원망의 눈빛을 했다.
“엄마 자주 안 와서 미안해.”
이렇게 말은 했지만 엄마의 요양원 적응을 위해 필요하다는 원장의 말에 따라 일부러 더 자주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누구를 탓해야 할지 잠시 궁리했다.
옷을 챙겨 입히고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나는 근처 호수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오랜만에 호수를 보면서 엄마와 소풍 분위기라도 낼까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날은 흐렸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추웠다. 계절은 초봄.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개나리가 눈에 띄었지만 날씨는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다.
잠깐 엄마를 산책시킨 뒤 다시 차로 돌아왔다. 사실 요양원에 오기 전, 이렇게 산책할 것에 대비해 김밥과 간단한 간식을 사들고 왔다. 차 안에서 엄마에게 간식을 주었다. 모녀 둘이 그렇게 앉아있으니 청승맞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에게 엄마의 상태를 아직 알리지 않아 집으로 가기도 불편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면 엄마가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었다. 뭔가 목적 없이 그냥 엄마를 만나러 온 길. 갈 곳 없는 상황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잠시 그렇게 앉아있었다. 돌아갈 곳은 요양원뿐이었다. 나온 지 한 시간 여 만에 엄마를 다시 데려다주었다. 일단 바람을 쐬었고 딸내미 얼굴도 보여주었으니 엄마의 태도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면서. 그 후 바로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나 혼자만 한없이 끙끙댈 수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전화로 나누는 것도 적절하지 못해 보였다. 결국 무거운 발걸음을 친정으로 옮겨 아버지를 만났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나를 보고 놀라는 아버지. 나는 숨을 크게 쉬고는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아버지, 엄마가…. 엄마가 다른 할머니를 해코지해요. 거기 요양원에 하루 종일 있는 것이 답답해서 그런지……. 그 할머니는 사지도 멀쩡한데 당하고 있대요, 그 할머니의 가족이라도 알면 큰일일 것 같아요. 어쩌죠?”
나처럼 한숨이라도 몰아쉬며 한탄할 줄 알았건만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입을 여셨다.
“그럼 그 원장에게 전화해서, 다시 주간보호로 돌리자고 해라. 사실, 나도 네 엄마 없이 집에 혼자 있으니까 영 허전하고 어색했다. 아무리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환자라도 옆에 숨 쉬고 있는 게 낫지, 네 엄마 없이 혼자 있으니 영 내 마음이 그래. 그냥 아버지가 엄마 볼 테니, 다시 데려와.”
‘그냥 아버지가 볼 테니’ 이 말이 왜 그렇게 내 마음을 때리는지 몰랐다. 꾹꾹 눌렀던 눈물이 터져 나와 설거지를 핑계로 등을 돌렸다.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엄마의 간호를 위해 선택한 결정이 이런 식으로 원점으로 돌아간 것에 감당 못할 허탈감이 밀려왔다. 눈물을 훔치는 나를 발견한 아버지가 내 등에 대고 말했다.
“인생 별거 없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그 말에 다시 왈칵, 쏟아진 눈물을 나는 좀 더 오랫동안 감당했다. 그리곤 조금 추슬렀을 때 아이들이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었다며 서둘러 친정집을 나와 버렸다. 집으로 향하며 오늘의 내 감정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판단하려는 시도를 또 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