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보호로 방식으로 돌려서 아침부터 저녁까지만 센터에 있게 되자 엄마는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른 할머니에게 해코지도 안 한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는데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전화에 또다시 당황했다.
“나, 이제 그 요양원 안 보내련다!”
‘이제 내가 볼 테니’라는 말이 필시 주간보호도 보내지 않고 온전히 다 혼자 엄마를 돌보시겠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왜 갑자기 엄마를 안 보내겠다는 건지.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해는 됐다. 엄마가 센터에 종일 돌봄으로 가 있는 한 달여 동안 이전에 주간보호 차량을 운행하던 기사가 바뀌었다고 했다. 새로운 기사는 주간보호에 다시 합류한 엄마를 새로 만났는데 엄마가 기저귀를 차는 데도 냄새가 난다며 차로 이동할 때마다 엄마 자리에 신문지를 깔아 두었다. 그런데 엄마가 그 신문지가 귀찮다며 내팽개치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기사는 집에 도착해서 아버지에게
“이 할머니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라며 소리쳤다. 며칠 동안 아버지는
“에구, 이 사람이 집에서도 고집이 세고 말을 잘 안 들어요, 환자니까 그렇죠.”
라고 이해를 구했지만 기사는 계속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몇 번 그 일이 반복되고, 아버지는 기분이 나빠 더 이상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엄마의 기저귀가 문제였다. 엄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화장실에 갈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기저귀가 새 버려 아버지가 힘들게 뒤처리해주어야 하는 일도 자꾸 생겼다. 약간의 요실금 증세용으로 쓰던 팬티형 기저귀는 흡수력이 부족했지만 그에 익숙해진 엄마는 센터에서 더 흡수력이 좋은 밴드형 기저귀를 채우려 해도 한사코 벗어버리며 거부를 해왔다. 그런 상황들이 지금의 일을 야기했다
.
나는 원장에게 전화해서 상황 설명을 했다.
“어휴, 그 교장선생님이….”
원장님은 ‘교장’이라는 단어부터 꺼내며 한숨을 쉬었다. 그 기사는 교장선생님으로 일하다 은퇴하고 그 일을 하는 거라 했다. ‘교장 선생님 출신이 왜 이런 일을?’이라는 편견 어린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어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교장선생님까지 하신 분이 이렇게 기사로 다시 일하실 생각을 하시고. 그런데 그렇게 큰마음먹은 김에 환자분에게 너그럽게 해 주시면 좋을 텐데요.”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쓴 채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상의했다. 원장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설득해보고 기사에게도 주의를 주겠다고 했다. 몇 시간 후 원장은 아버지와 통화했다며 주말이 지난 다음 월요일부터 엄마를 다시 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알겠다고 하세요? 어휴, 아버지 화 많이 나 있었을 텐데 설득을 하시다니, 원장님, 대단하시네요. 원장님이 이렇게 우리 엄마 포기 안 하고 챙겨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 기사님에게, 그 할머니 딸이 많이 미안해한다고, 수고 많으시다고 전해주세요. 교장선생님까지 하시다가 그 일 하시려면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제가 방수 방석 하나 보낼게요, 월요일부터 차에서 엄마 자리에 그 방석 써달라고 말해주세요.”
“뭘요~ 이런 데서 일하려면 봉사정신이 있어야지요. 제가 강하게 말해야겠어요.”
“그래도 대우해드리면 더 잘해주실 텐데 저희 아버지도 한 성격 하시는지라….”
“아버님도 기분 상하셔서 그러셨겠죠. 그래도 하루 종일 어머님이 집에 있으면 아버님도 많이 힘드실 테니까요. 월요일부터 방석 써 볼 테니 어머님에게 방석 던지지 말라고 한 번 더 말해주세요. 저도 말할게요.”
나와 원장의 대화는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주말에 아버지에게 한 번 더 연락해, ‘원장이 기사를 잘 단속한다고 했으니 월요일에 엄마를 잘 보내시라’고 말씀드렸다.
그 후 월요일. 이쪽저쪽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나는 이 일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 건 늦은 오후였다.
“요양원에서 전화 못 받았냐?”
“아뇨? 왜요? 엄마 안 보내셨어요?”
“오늘 아침에 차 앞까지 엄마를 데리고 나갔는데 이 기사가 우리를 보자마자 또 엄마가 말을 안 듣는다고 소리치는 게 아니냐? 내가 확 기분이 상해서 다시 네 엄마를 집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제 원장이 전화하든 말든 다시는 거기 안 보낼 테니 그런 줄 알아라!”
아, 나는 무슨 소용인가. 내가 하려는 노력은 왜 이렇게 다 무위인가. 난 무엇을 위해 어떻게든 엄마를 요양원에 잘 보내려 하고, 아버지를 좀 편하게 하려 하고, 원장과 그렇게 상의했던 것일까. 사회생활을 하고 일의 성취를 적잖이 느껴본 나도 아이를 키우며 인생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서서히 깨달아왔지만 엄마 문제로 아버지와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는 인생 자체의 무력감조차 느꼈다. 길을 정해도 그 방향으로 절대 가지 않는다. 노력과 상관없이 언제나 일은 내 손을 떠나 통제할 수 없는 형태로 굴러간다.
원장에게 다시 연락해 아버지의 뜻을 전했다. 원장도 이제 지친 듯 답했다.
“저도 정말 안타깝고 화도 나네요. 오늘 기사님에게 화냈더니 그만둔다고 하네요. 다른 할머니들은 다들 좋아하시는 분인데….”
난 원장님의 이 마지막 말 ‘다른 할머니들은 모두 기사님을 좋아하시는데’라는 표현에서 멈칫, 했다. 그래, 항상 우리 엄마만 문제지. 이제까지 그런 문제 많은 엄마를 다른데 못 보내고 자신이 돌봐야겠다는 사명감과 연민을 갖고 있던 원장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겠지. 우리 엄마만 고집을 피우고, 우리 가족과만 문제가 생기는 기사, 누가 요양원을 떠나야 하는지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그 기사 계속 있으면 엄마 절대 안 보낸다.”라고 소리쳐도 엄마를 안 보냈을 때 요양원 측은 아쉬울 게 별로 없을 것이다.
원장의 ‘다른 할머니는 다들 좋아하시는데’라는 말에 짐짓 기분이 나빠져서 그를 믿었던 마음 또한 퇴색하기 시작했다.
“다른 할머님들은 저희 엄마처럼 변을 잘 못 가리시고 그러지는 않으신가 보죠. 성격 깔끔하신 분이면 엄마 같은 증상은 못 견디실 거예요.”
“죄송해요.”
원장은 더 이상 길게 변명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시도를 하면 할수록 일이 망쳐지는 것 같은 이 상황에 진절머리가 났다. 빨리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었다.
“원장님, 어쨌든 안 보내겠다고 하는 건 우리 쪽이잖아요. 이제 그만 저희 엄마 놓으셔도 될 거 같아요. 원장님이 그동안 저희 엄마에게 잘해주신 공도 없이 여기저기서 모진 소리만 들으셔서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 하는데 마무리 이렇게 해서 죄송해요. 제발 아버님께 사과 한 마디만 하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는데 절대 안 하는 기사님도 원망스럽고 무조건 안 보내시는 아버님도 원망스럽고. 기사도 어머님 문제 아니면 다른 분에게는 성의껏 잘하는 분이라서요. 제 마음이 복잡하네요.”
“어쩌겠어요. 기사님 바꾸시기도 힘드실 테고요. 이달부로 퇴소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야겠죠?”
“네, 기사를 새로 구하는 일도 쉽지는 않아서요. 퇴소로 생각하시길 바랄게요. 전 최선을 다했는데 이렇게 끝나게 된다니 섭섭하네요. 어머님 고집부릴 때는 힘들지만 웃고 얘기하실 때는 서로 통했어요. 다른 좋은 기관 찾으시길 바랄게요.”
나는 원장과 메시지로 대화를 나누며 행간에서 원장의 우리 가족에 대한 원망과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는 좌절을 읽었지만 애써 외면하려 했다. 이제와 그런 말에 서운해하고, 원망하는 건 소용이 없었다. 2년 여 동안 이 센터에서 엄마를 잘 돌봐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