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른 할머니를 해코지한 것, 엉덩이 밑의 신문지를 내팽개친 것, 싫은 것은 싫다고 확실히 표현하는 이 모든 행동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마의 존재감 어필이었다. 우리는 엄마가 사는 세상에 관한 많은 것을 결정하면서 정작 엄마를 중심에 두지 않았다. 그걸 알아챈 엄마가 ‘나 여기 있소’하고 소리친 것이 바로 그 행동들이었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공감한 장면이 하나 더 있었다. 알츠하이머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는 노인을 두고 자식들은 서로 자기 집에서 모시겠다고 한다. 요양기관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그러자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녀가 한 마디 한다.
“할아버지 의견은 안 물어봐요?”
노년기의 환자를 어디서 돌볼지, 요양원에 보낼지 말지, 요양원에서는 어떻게 돌볼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실 환자는 그 중심에 있지 않다. 스스로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치매환자라는 이유로 보호자들은, 그들의 의지를 전혀 묻지 않고 모든 것을 결정하지만 막상 자신은 전혀 개입하지 않은 결정에 의해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되었을 때 모든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환자 자신이다.
그래서 요즘은 ‘돌봄장’을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죽음에 대비하여 쓰는 것이 유언장이라면 ‘내가 아프면 이렇게 돌봐달라’라며 돌봄에 대한 구체적인 요청 사항을 적는 것이 돌봄장이다. 이미 ‘내가 치매에 걸리면 요양 기관에 보내주세요’ ‘되도록 가족과 함께 있도록 해주세요.’ ‘이런 음악을 들려주세요’ ‘목욕은 며칠에 한 번 시켜주세요.’라는 내용의 돌봄장 써보기를 실천하는 노년 모임도 있다. 질병의 기간에도 최소한의 나를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돌봄장을 써두는 것인데 사실 그 내용이 돌봄자에 의해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그래도 막상 질병을 맞이했을 때 환자 본인에게나 돌보는 가족에게나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환자의 의견을 묻더라도 그 답이 유용하지 않은 경우도 분명 있다. 노년의 삶을 다룬 대표적인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희자(김혜자 분)는 치매에 걸리자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요양원에서 지내겠다고 한다. 아직은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운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요양원을 탈출한다. 갑갑한 그곳에서 못 지내겠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여서 변덕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은 모두 변덕쟁이다.
병을 마주하고 환자를 돌보는 일련의 과정은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낯설기만 하다. 모든 게 처음이다. 이런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지만 환자의 남은 생을 생각하면 그 시행착오의 시간도 아깝다. 그래서 난 엄마를 돌보기 위한 새로운 환경을 고민하면서 그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나의 요양원 검색과 탐방이 다시 시작되었다. 어차피 센터를 나온 것은 아버지의 결정이니 어디 한 번 아버지가 온전히 엄마를 돌보게 할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렇게 불같이 화내던 아버지도 ‘요양원이 거기밖에 없냐?’고 물으며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눈치셨다. 물론 나 또한 아버지가 하루 종일 엄마를 돌보게 두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수시로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까지 쓰러지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저 멀리 지방에 있어 거리는 멀지만 공간이 널찍하고 풍경이 좋아 엄마가 덜 답답해할 것 같은 곳도 가봤다.
정성스럽게 돌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다른 곳은 공간이 너무 좁아 이른바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이곳도 저곳도 당장은 엄마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했다. 결국 다시 친정집 근처에서 찾아낸 ‘치매 전담시설’ 인증을 받은 요양원에 상담을 했다. 그간의 이야기를 듣던 원장이 내 두 손을 꼭 잡고 다정스레 말했다.
“힘드셨겠어요. 예전 계셨다는 요양원은 기사님 태도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치매 환자를 다루는데 능숙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냄새 문제도 기저귀를 잘 활용하면 되는데.”
능숙한 태도로 말하는 원장은 어딘지 모를 세련미를 풍겼다.
“그리고 너무 먼 곳에 모시지 마세요. 가족이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모셔야죠. 멀리 모시면 그거야말로 현대판 ‘고려장’ 아니겠어요? 이곳에는 아무 때나 시간 나실 때 환자를 보러 오셔도 돼요.”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거침없이 사용한 단어에 괜스레 내가 민망스럽고 누가 들을까 싶어 주변을 살폈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만 해도 친정과 한 지역에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친정에 아버지를 뵈러 올 때마다 엄마를 같이 보러 올 수 있는 상황이 여러 모로 편했다. 아무래도 멀면, 마음이 있다고 해도 자주 들여다보기 힘들 것이다.
해당 요양원도 두 센터로 나눠서 전일 요양과 주간보호를 모두 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처음엔 주간보호로 시작해서 두 달쯤 지나 24시간 요양으로 전환해서 엄마를 맡겼다. 나는 예전보다 더 세심하게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그동안처럼 엄마가 거부감 아니 존재감을 강하게 표출할 정도로 불편하면 안 되었다. 나는 첫날부터 엄마에게 계속 물었다.
“엄마, 괜찮아? 여기 있어도 괜찮아?”
엄마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보다 공간이 더 널찍하고 깨끗해서 그럴까? 엄마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편해 보였다.
나는 이후 요양원에 자주 방문해서 엄마를 지켜보고 요양보호사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며 인간적인 친분도 쌓았다. 가끔은 요양보호사들을 위한 간식을 따로 사가기도 했는데 이는 마치 유치원 선생님에게 잘해야 그 선생이 내 아이에게 잘할 것 같은 마음과 같았다. 엄마는 가끔씩 집으로 와서 식사를 하다가도 먼저 요양원으로 돌아가겠다며 혼자 몸을 일으킬 정도로 그곳에 익숙해져 갔다. 엄마는 그곳에서 2년 여 기간을 잘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