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분실하다
1월 20일.
5일 내내 새벽에 눈이 떠지던 내 몸이 그간의 피곤을 못 견뎠는지 오늘은 아침나절까지 푹 잠을 자다 깼다. 나와 오빠, 아버지가 모두 함께 친정집에서 자고 일어난 상태였다. 나는 아침은 안 먹는다던 오빠를 굳이 불러 식사를 같이하고 아버지와 함께 이런저런 상의를 하다가 오전 면회 시간이 되어 다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나 되어야 소진될 것이라던 승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 몸 상태가 승압제를 많이 원할만큼 안 좋다는 의미였다. 의사는 2~3시간 후면 약이 전부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고 엄마는 약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몸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는 환자이기 때문에 임종을 보려면 멀리 가지 말고 병원 주변에서 있으라고 알려주었다.
병실에서 나와 로비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밥 먹고 오자.”
밥. 엄마 사고가 난 이래 며칠 동안 우리가 밥을 먹는 행위야 말로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죽음을 놓고 고민하면서도 우리는 살기 위해 밥을 먹는 일. 그게 되게 이상했었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평소보다 더 먹게 되던 내가 요 며칠 동안엔 난생처음, 음식을 먹을 때 입안에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알게 되고 도저히 음식이 당기지 않아 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라도 밥을 차리고 같이 먹게 되는 식사 시간 자체가 며칠 동안 그리도 어색하기만 했다. 그런 어색함을 다시 한번 느끼며 우리는 엄마를 보내기 전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이번엔 입맛이 있건 없건 아주 많이 먹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하나 샀다. 원래 아침 커피 말고는 잘 안 마시는데 왠지,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병원으로 다시 올라가 중환자실 바로 앞에서 커피를 막 마시려던 참이었다.
“보호자분!”
갑자기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우리를 불렀다. 나는 마시다 만 커피를 정수기 위에 다급히 올려놓고, 아버지를 모시고 병실 쪽으로 달려갔다. 복도 끝에서 업무 통화를 하던 오빠도 전화를 끊고 달려왔다.
“이제 약이 다 소진됐어요. 들어와 계셔야 할 것 같아요.”
“아….”
우리는 엄마 옆으로 다가갔고, 간호사는 우리 네 식구만의 시간을 위해 침대 옆 커튼을 쳐주었다. 네 식구의 시간. 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엄마는 셋만 남기고 먼길을 떠나려 한다.
호흡기를 낀 엄마에게 당장은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10분 정도 지나자 침대 옆, 엄마의 바이탈 상태를 알려주는 ‘환자 감시장치’ 모니터의 숫자가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잘 해석할 수는 없지만 혈압인 것 같은 숫자가 먼저, 그다음엔 심장과 관련된 것 같은 숫자가 내려갔다. 뚝, 뚝, 뚝. 숫자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빨리도 떨어져 갔다. 투약을 멈추자마자 이렇게도 쉽게 가려하다니. 그동안 버티느라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미안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급하게 가려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엄마를 지켜보던 나는 문득,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엄마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티슈를 꺼내 엄마의 눈가를, 엄마의 코 아래를, 엄마의 입 주변을 그리고 엄마의 손과 발을 차례로 닦아주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엄마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간호사에게 가위를 달라고 부탁해서 엄마의 백발을 조금 잘라냈다. 나는 그것을 비닐백에 넣어서 무슨 값비싼 보물이라도 되는 양 가방에 고이 집어넣었다. 그 후 엄마의 마지막 얼굴까지 사진으로 찍은 나는 0을 향해 치닫는 야속한 숫자들을 원망하며 엄마의 얼굴에 손을 얹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먼저 가서 잘 지내고 있어, 응? 거기선 마음껏 걷고 뛰어다녀야 해, 알았지? 그리고 우리 나중에 웃으면서 만나자, 응? 응?”
오빠도 흐느끼며 말했다.
“죄송해요, 어머니. 제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이제 편히 쉬세요.”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삐, 삐, 삐, 삐, 삐이…….
모니터의 숫자 하나는 0이 되고 또 다른 숫자 하나는 물음표가 되었다. 숫자로 매길 수 없는 상태. 기계가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 엄마는 그런 상태가 되어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엄마 사고가 난 지 6일째 되는 날, 내가 잠도 푹 자고 밥도 잘 먹은, 1월 20일 오후 3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