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꾼

자식의 시간

by 조유리

엄마를 보낸지 100일 만에 아버지가 떠났다.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는 병원에 실려가 뇌출혈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을 하루 앞두고 중환자실에 있다가 산소포화도가 갑자기 떨어져 뇌사 상태가 되었다. 오빠와 나는 또다시 며칠의 연명치료 기간을 거치고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연이어 장례를 치르며 나는 누군지 모를 대상에게 면목이 없었다. 죽을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친척 어른들은 ‘너 만큼 잘한 자식이 어딨냐’라고 위로해주셨다. 그리고 그렇게도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알고 보니 '사랑꾼'이었다고, 그러지 않고서야 왜 그렇게 금방 엄마를 따라갔겠냐고 반문했다. 나이 80에 혼자 외롭게 지내시는 것보단 엄마 곁에 같이 있는 게 더 좋을 거라고도 했다.




어린 시절, 생계의 책임을 엄마에게 지운 아버지라고 원망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새벽 장사를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 또한 엄마를 많이 도왔다. 게다가 아버지는 요리를 비롯한 살림에 관심이 많았고 오빠와 나의 공부에도 신경을 썼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도 못 할 만큼 일찍 웬만한 한자를 다 익혔다. 아버지 덕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불만은 다른 것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살갑지 않았다. 애써 번 돈으로 엄마가 가구라도 하나 살라치면 그렇게 잔소리를 해댔다.

“도대체 쓰던 게 있는데 왜 사려는 거야? 사치 부리기는!”

내가 볼 때 엄마에게 사치스러운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건만 평범 이상의 절약 정신을 가진 아버지는 엄마의 소비를 한 번도 곱게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음식에 대한 타박도 꾸준했다.

“네 엄마 음식은 너무 짜. 몇 번을 말해도 안 고쳐져.”

내 입맛에도 아버지의 음식이 더 맛있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타박할 일인가. 나는 종종 엄마에게 고운 소리 한 번 안 하는 아버지가 진심으로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술을 잔뜩 마시고 20대인 내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야, 내가 네 엄마 생일 선물로 귀걸이를 사서 줬는데 네 엄마가 뭐라는 줄 아냐? 이거 가짜 아니냐고, 뭔 선물로 가짜를 주냐고 막 삐치는 거야. 야, 내가 이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어떻게 아냐? 그런 것 볼 줄도 모르고 그냥 동네 보석 가게 가서 하나 산 건데.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에이씨!”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살갑지 않았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사랑꾼'으로 보이던 때였다. 아버지처럼 세상 물정도 모르고 물건도 잘 사지 않는 분이 보석 가게에 혼자 가서 아내를 위한 선물을 고른 것만으로도 아주 큰마음 낸 거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엄마는 그걸 몰라줬을까.


“얘, 그 귀걸이를 하자마자 귓불이 따끔거려 할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손으로 긁어보니까 칠이 벗겨지지 뭐야. 아무리 몰라도 그런 걸 선물이라고 사 오니? 그래서 몇 마디 한 걸 가지고 저렇게 서운해하다니….”

엄마의 말도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와 엄마의 입장을 서로는 이해 못하고 나만 이해한다는 게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도대체 두 분, 나한테 왜 이러세요.

연이어 떠난 엄마, 아버지에게 나는 지금도 그 말을 하고 싶다.

두 분, 나한테 왜 이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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