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분실하다
1월 17일 오후
저녁 면회가 시작되었다. 아버지, 오빠와 함께 중환자실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엄마의 침대로 다가가다가, 나는 너무도 깜짝 놀랐다. 하루 사이에 엄마의 몸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런 엄마의 몸을 보자 ‘아, 엄마가 힘들어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저려왔다. 저렇게 누워 호흡기에 의지해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며칠 동안 우리는 엄마가 너무도 힘들 수도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건 아닐지, 갑작스런 두려움이 거칠게 몰려왔다.
난 눈물을 글썽이며 읊조렸다.
“어떡해, 엄마 너무 많이 부었다. 너무 힘든 거 아닐까.”
그런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마침 엄마에게 다가온 중환자실 담당 의사에게 오빠가 물었다.
“왜 이렇게 몸이 붓죠?”
“아무래도 누워만 계셔서 혈액 순환이 안 되니까요.”
“이런 상태의 다른 환자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죠?”
“그렇죠.”
오빠의 두 번째 질문에서, 애써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의도가 뚜렷이 읽혔다. 의사는 특이사항이 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의외로 혈압이 잘 유지되더라고요. 그래서 점심시간 이후 약 3시간가량 승압제를 투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후에 갑자기 대변을 많이 보시더니 혈압이 또 내려가서, 다시 조금 전부터 약을 투여하는 중이예요.”
엄마의 부은 얼굴에 좌절했던 나는 ‘혈압이 몇 시간 동안 잘 유지되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대변을 봤다’는 말에도, ‘내장 기관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잠시 눈이 커졌었다.
면회가 끝나고 로비로 나왔다. ‘엄마가 혹시라도 깨어날 수도 있는 것일까?’ 생각하며 혼란스럽던 나는 문득, 예전에 엄마를 데리고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한 위급 환자가 많은 양의 대변을 본 다음 바로 임종을 한 것이 떠올랐다. 아, 그런 것인가…….
로비 벤치에 앉은 오빠와 나, 아버지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 없이 몇 초를 보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오빠에게 말했다.
“엄마 너무 많이 부었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힘들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 엄마, 예쁜 모습으로 보내주고 싶은데 저러다가 몸 상태가 더 망가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도 되고….”
이런 단어, 이런 표현, 이런 문장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1월 15일 이후로 난생 처음 겪는 일투성이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엄마를 언제 보낼지, ‘일정을 짜야하는' 현실의 가혹함에 치가 떨렸다. 오빠도 더 이상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서 엄마를 더 치료할 생각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일단, 연명치료 중단을 ‘내일 오전 쯤’으로 생각해보자고 서로 이야기했다.
1월 18일.
오전 면회에서 만난 엄마는 여전히 퉁퉁 부어있었다. 그래도 상태는 안정적인 것 같았다. 오빠와 나, 아버지는 별말 없이 엄마를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회생의 희망은 옅어지고 있었다. 이제 그다음은 일정에 관한 문제였다. 곧 설 연휴가 다가오고 있었다. 명절 연휴에 장례를 치르는 일은 우리에게나 문상 오는 손님들에게나 못 할 일이었다. 오빠와 나는 머리를 모으고 앉아서 각자 휴대폰으로 달력을 쳐다보았다. 엄마의 상태는 승압제를 끊으면 호흡기와 상관없이 바로 혈압이 떨어지고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정말 목숨이 경각에 달린 가장 위독한 상태다. 그렇다면, 언제 승압제를 끊을 것인가.
아, 누가 죽음을 인간의 힘 밖의 영역이라고 했는가. 그렇다면 엄마의 목숨을 놓고 스케줄을 짜고 있는 우리는 뭐란 말인가. 차라리 선택지가 없었으면 했다. 의술이 덜 발달되고 연명치료라는 기술 자체가 없어서, 정말 죽음은 산 사람들이 어쩌지 못할, 신 혹은 운명의 영역으로 온전히 남겨질 수 있었을 때가 훨씬 ‘인간적’이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쓸데없이 많은 것을 만들어냈고 누군지 모를 그들이 이 순간 나는 치가 떨리게 원망스러웠다.
오빠와 아버지는 일단, 안전하게(명절과 겹치지 않도록) 설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에 연명치료를 멈추자고 말했다. 오늘로부터 일주일이 넘게 남아있었다. 나는 엄마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승압제를 끊지 않아도 혈압이 갑자기 내려가 금방이라도 우리를 급하게 불러 낼 순간이 언제라도 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긴 일정을 언급하시는 걸 보니, 헛된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좀 더 기다려보자는 말을 나누고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1월 19일
집에 있는데 병원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엄마의 혈압이 급격히 내려가 응급 상황을 맞았다는 것이다. 꿈도 크지, 이런 엄마를 두고 일주일을 더 버텨보자고 했었다니. 가족이 병원에 달려왔을 때 엄마의 혈압은 다시 안정되었지만 이대로는 단 몇 시간 안에라도 다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오빠와 나는 아무래도 당장, 연명치료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부비며 괴로운 듯 말씀하셨다.
“막상, 보내려니….”
전날, 아버지가 일주일 이상 더 버텨보자고 말씀하셨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엄마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마음이 아파 이제는 어서 보내고픈 마음이었지만 아버지는 또 다른 형태로 마음이 아파 엄마를 못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침묵을 견디며 멀뚱히 있다가, 결심을 하고, 연명치료포기 동의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동의서를 쓴다고 해서 바로 승압제 투여를 멈추진 않았다. 현재 링거를 통해 엄마에게 투여되고 있는 승압제가 모두 소진되면, 그다음 더 이상 투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들어가고 있는 승압제는 아마도 내일 오후 정도에 다 소진될 것이라 했다. 당장이라도 엄마의 임종을 맞을 마음으로 비장하게 숨을 들이쉬며 동의서를 쓰러 간 상황을 생각하면 좀 웃기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는 극단적으로 진지하고 슬픈 일도, 또 극단적으로 웃기고 행복한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또, 그나마 그런 이유로 괴로운 가운데서도 삶을 유지한다.
우리는 결국, <연명치료포기 동의서>에 세 명 모두의 이름을 적고 서명을 했다. 요양원에서 사고를 당한 엄마가 병원에 실려 온 날로부터 5일째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