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자식의 시간

by 조유리

나의 친할아버지는 전쟁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친할머니가 그나마 아버지의 청년시절까지 살아계셨던 것 같은데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나보고도 유방암 검사를 자주 해보라고 수시로 경고하셨다.

아버지의 8남매 중 마지막 아들, 즉 나의 작은 아버지가 젊은 시절 가장 심한 방황기를 보냈었다고 아버지는 말하곤 했다. 어느 날 그 작은 아버지가 형제 중 맏이인 큰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신세 한탄을 하더란다.

“에이, 나는 부모도 없는 고아란 말이야!”

그랬더니 고모 왈,

“야 이 놈아, 너만 고아냐, 나도 고아다!”

작은아버지는 기가 막히면서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때 작은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고모와 작은 아버지는 15살 넘게 차이가 난다. 20대에 부모가 없는 거랑 40대에 없는 거랑은 차이가 있다. 40대와 60대에 맞는 부모와의 이별이 또 다를 테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난 숨 가쁜 인생에 비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평범한 내 주변 40대 또래들이 아직은 건강을 유지하는 부모와 함께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면 부럽고 슬프다기보다는 뭐랄까, 좀 이상한 감정이 들긴 한다. 명절에 만날 부모가 없는 것도, 어버이날 꽃을 시어머니용 한 송이만 준비하는 것도, 나의 외가, 친가 관련 무언가가 궁금해질 때 당장 연락할 곳이 없다는 것도, 기일이라는 것을 맞으며 제사상을 차리는 것도 아직은 좀 어색하다.

엄마, 아버지가 떠난 후엔 부모님 관련 꿈을 꾸지 않는다. 아버지마저 쓰러진 뒤 자괴감에 시달릴 때 아버지가 꿈에 나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또렷이 말해준 것을 마지막으로 부모님은 내 꿈에 나올 기미가 없다. 살아계신 동안 꾸었던 부모님 꿈이 항상 불안한 악몽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두 분은 여기, 40대 고아를 남겨두고 하늘에서 편히 잘 지내고 계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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