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자식의 시간

by 조유리

엄마 사고가 일어나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쓴 뒤 기존에 가입되어 있던 뇌질환 환자 보호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들어갔었다. 내 청원의 링크와 함께 엄마가 이런 사고를 당했다고, 청원에 동의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게시글을 썼더니 꽤 많은 이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동의했다고, 힘내라고 하는 격려의 댓글 사이에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가 이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뇌졸중으로 누워 계신 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못 모신다니까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어야 말이죠.’

집에서 직접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 ‘효자’의 댓글에서 ‘그러게 왜 부모님을 요양원에 맡겼어요?’라는 책망을 읽었다면 그건 내 자격지심 때문일까? 이런 일에 대해, 부모를 직접 모시지 않고 요양원에 맡긴 자식에게 상당 부분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시선의 존재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자격지심이라기보다, 그런 시선에 대한 이해라고 해두자.

누군가 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지 글쎄, 잘 모르겠다. 물론 후회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엄마가 떠나는 순간의 모습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요양원에 모시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 수도. 하지만 내가 ‘후회한다’고 말하고 이 일을 매듭짓기에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후회한다’는 어떤 의미에서 ‘반성한다’가 될 수 있고 그 말 뒤에는 ‘그래, 그러니까 다음엔 안 그럴 거야.’라는 흔한 결론이 뒤따를 수 있다. ‘다음’이란 있을 수 없는 나의 경우가 아니어도 요양원에 부모를 모신 모든 이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이 결론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처음 두 번의 주간보호센터에서 퇴소를 종용당하고 전 요양원에서 기사와 아버지와 다툼이 있었을 때 나는 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걸어 이런 불만 사항은 어디에 제기해야 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공단에서는 보통 요양기관이 재정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지, 눈에 보이는 뚜렷한 폭력이나 감금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감사를 할 뿐 그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감시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공식적인 관리 감독 기관은 해당 요양원이 위치한 지역의 시청이나 구청 등인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입소자와 가족을 친절하게 대하고 건강을 잘 살피는지에 대한 항목 같은 것은 공단의 감시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밥 한 끼를 해결하는 식당 하나도 별점이 매겨지는 세상에서 아픈 사람을 맡아 돌보는 곳이 운영을 제대로 하는지에 대한 감시 기준이 그리도 미흡하다. 코로나 시대가 되어 가족의 면회도 제한되고 외부인의 출입 또한 어려워진 요양기관의 운영은 얼마나 잘 관리가 될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대우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는 엄마가 떡을 먹고 숨이 넘어가는 데도 제대로 돌봐주지 않은 요양보호사를 원망하지만 사실 일반적인 요양보호사의 업무 환경이 열악하고 대우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하는 이들이 대우받아야 그들이 하는 일도 잘 되는 법이다. 이 모든 것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보호하는 1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하지만 세상은 부모가 어린 자식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낸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육 기관이 부족하고 운영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 사회문제가 되곤 한다. 아이 육아를 부모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쌓이고 있다. (실제 얼마나 잘 구현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아이 부모들이 그동안 외친 목소리의 힘이다.

반면 나이 들고 병든 노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책임이 온전히 자식에게 돌아간다. 나는 엄마가 아픈 동안 ‘보호자’가 되어 건강보험공단이나 병원 관련 행정 일을 처리하면서, 혼자 살거나 자식이 없는 노인들은 이 많은 절차를 어떻게 처리할까 걱정스러웠다. 요양기관에서 사고가 나면 그곳에 부모를 보낸 자식이 ‘불효자’가 되어버리는 분위기, 나는 이런 부분이 잘 바뀌지 않는 것은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노인들이 이미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식들도 부모를 보내며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고, 가슴 아픈 일을 다시 상기하는 것도 힘들어 모든 일을 덮는 경우가 많다.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안 되었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내가 잘못이지.’라는 자조적인 한탄으로 일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리 투쟁적인 사람은 아닌데, 나름 소심한 소시민인데, 이런 일을 겪고 나서는 ‘가만히’가 안 되었다. 요양기관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졌다면 그 운영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이런 마음은 오빠와 내가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소송을 시작했다. 그 소송이 엄마가 떠난 지 1년 반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부모가 없는 고아가 되었지만 나의 ‘자식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이전 27화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