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자식의 시간

by 조유리

많은 딸들처럼 나도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를 입에 달고 산 적이 있었다. 그 말의 의미 절반 이상은 ‘엄마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을래’였으나 그게 내 마음대로 될 리 만무하다. 건강을 위해 노력해도 늙음과 병은 언젠가 다가온다. 다만 그것이 내게 왔을 때 나는 내 탓을 하지는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엄마에겐 ‘왜 아파서 내 고생을 이렇게 시키냐’고 탓을 해놓고, 나는 안 그럴 거란다. 참. 나도 못됐다.

배곯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자식으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역시나 자식으로 사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이들을 본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부모의 병시중과 이별을 겪었으니 이제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마주할 일이 잔뜩 남았다. 벌써부터 안타깝고 답답하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노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아직 본격적인 단계는 아니지만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언젠가 정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로서 자질이 별로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글에 매달리는 나 자신이 애처롭기까지 하지만 ‘업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어도 ‘나 자신이 되기 위한 글쓰기’라는 트렌드에는 어느 정도 부합하는 사람이라 위로하며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남의 인정보다 ‘자기 위안’이 더 소중할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가슴 아픈 엄마 이야기를 왜 쓰냐’ ‘부끄러울 수도 있는 가정사를 왜 쓰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인생의 큰 챕터 하나를 넘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챕터를 넘겼다고 엄청 희망적이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리라는 기대는 옳지 않다. 내가 아직도 엄마에게 마음이 묶여있듯 인생은 언제나 지지부진하고 질척거린다. 쿨하지 못한 과정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챕터에 접어들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글을 쓰고 마음을 다 털어내서 그런가 이제 부모님에 대해서는 감사함만 남았다. 온갖 애증이 찐득하게 묻어있던 부모와의 기억이 시간을 통해 씻겨나간다. 너무 많이 씻겨져 그 무엇도 남지 않았을 때쯤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 좋겠다.

살아야겠다, 이제. 아내로서, 엄마로서, 나 자신으로서의 또 다른 인생을.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살아냄 속에 부모님이 항상 있을 것이다. 거기, 그렇게, 엄마가 있을 것이다.



※ 그동안 연재한 <그런 엄마가 있었다>를 읽어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아픔에 대한 공감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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