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없는 친정 동네에서

자식의 시간

by 조유리

엄마가 떠나기 6개월쯤 전부터 나는 친정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계획했었다. 엄마와 아버지에게 내 돌봄이 더 필요한 시기가 된 것도 같았고 마침 큰아이 중학교도 그 지역으로 확정이 되었다.

아이 중학교 진학을 앞둔 겨울, 슬슬 이사를 준비하려 했을 때 갑자기 엄마가 떠났고 전염병이 창궐했다. 아이 입학과 이사가 미뤄지다가 가까스로 이사 올 집을 계약한 다음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우리 곧 이 동네로 이사 올 거예요.”

점심을 함께 먹으며 내게서 이사 확정 소식을 들은 날, 아버지의 눈은 반가움에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조금 무리해서 마당 있는 주택으로 구했어요. 우리 거기서 같이 고기 구워 먹어요.”

그 소식을 전하고 아버지와 헤어진 날, 그날이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본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친정이 없는 친정 동네에 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집의 이사를 하고 엄마와 아버지 유품을 정리했다. 그것 말고도 두 분의 사후 처리는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나를 이 동네로 부른 무언가를 원망하고 있다. 내가 부모 옆에 살려고 왔지, 이런 뒤처리나 하러 왔나? 뭔 운명이 이렇담! 쳇.

그런데 이미 이사를 결정한 다음 부모님이 떠나셨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상 속에서 친정의 기억을 흠뻑 느끼며 살고 있다. 친정집 옆 상가의 반찬 가게는 반찬이 싸고 맛있어 자주 간다. 엄마가 있던 요양원 옆 식당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라 가끔 지인과 방문했다. 엄마의 불편한 몸을 부축하며 함께 외식했던 식당들, 아버지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술집,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던 병원이 내 시야에 한가득 머물러 있다.

지금 상태로만 보면 나는 엄마를 ‘분실’한 건 아닌 것 같다. 엄마는 곁에 없고 소송건 때문에 순간순간 마음 졸이지만 나는 지금 엄마의 공간에 둘러싸여 있고 자식의 시간도 계속되고 있다. 내 마음 또한 그날만큼 ‘어지럽지’는 않다.

‘그분은 떠나셔도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입니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요즘 내가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좀 신파적이려나.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를, 그리고 그 곁에 있을 아버지를 더욱더 짙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내가 부모님에게 배운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젊은 시절 보낸 삶과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아프고 나서는 바로 그 질병과 나이 듦을 통해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고 떠났다. 그런 엄마에게 밥을 챙겨준 아버지 또한 엄마를 돌봤던 시간, 그리고 혼자 계셨던 시간에 대한 회한을 자식들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떠나셨다. 내게는 이제 그 배움과 깨달음을 토대로 살아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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