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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15. 2023

노인 하나 돌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통해 바라본 독거노인 문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일상 생활 자체가 위험. 독거 노인

2019년 기준 65세 이상 가구 수는 총 438만8천 가구. 그중 1인 가구가 150만 가구에 달합니다. 그 비율이 34.2%를 차지하죠. 이는 2017년 33.7%와 비교하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는 수치인데 2037년에는 35.9%, 2047년에는 36.6%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하더군요.* 반면 노부부 혹은 1인 노인과 자녀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방식의 노인 가구는 독거노인가구에 비해 그 구성비가 상당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독거노인 수의 증가만으로 그 삶의 취약성이 높아졌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고령자 관련 다각도의 통계들은 1인 가구가 노인부부나 자녀동거노인과 비교할 때 얼마나 상대적으로 취약한지를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2020 보건복지부가 실행한 ‘노인실태조사 2020’에 따르면 ‘건강이 나쁜 편’이라고 대답한 1인 노인가구, ‘영양관리 주의’ 단계에 있는 1인 노인 가구, 경제상태에 대해 ‘만족하지 않음’으로 답한 노인 1인 가구, ‘우울증상이 있음’으로 응답한 노인 1인 가구의 비율은 모두 노인부부가구나 자녀동반가구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경향은 ‘자살 생각의 빈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다각도의 생활 상태를 묻는 질문에서 독거노인 가구의 대답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노인 가구의 대답보다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동거가구에 비해 독거노인가구의 노인빈곤률이 더욱 높은 것도 안타깝습니다. 2014년 기준,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독거노인 비율은 53.6%를 차지하고 이는 동거가구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연결과 커뮤니티가 유일한 해법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보면 이러한 독거노인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마을에서 혼자 살아가는 고집불통 노인 오베(롤프 라스가드 분)가 마을 이웃들과 본의 아니게 어울리게 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입니다. 여기서 큰 장벽은 ‘고집불통’이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를 고집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변화되기가 쉽지 않죠.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고립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그런 노인들에게도 마음 한 구석 따듯한 잔정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용기있고 과감한, 그러면서도 소소한 소통의 관계만 있다면 독거노인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웃에 새로 이사 온 파르바네(바하르 파르스 분)가 그 역할을 합니다.     


사다리를 빌려달라고 찾아가고 운전을 가르쳐달라고 조릅니다. 자신의 딸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유기된 고양이를 키우라고 반강제로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고집불통인 줄만 알았던 오베는 파르바네의 거침없는 태도에 어쩔 수 없는 듯 부탁을 다 들어줍니다. 이런 츤데레가 또 없네요. 사실 오베에게는 마을을 깐깐하게 관리하는 자신의 일을 인정해주고 오히려 도움을 청해서 그에게 해야 할 역할이 있음을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외로워지는 이유는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쓰임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우울해지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죠. 영화 속 오베도 그러했던 것처럼요.   

   

그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오베가 매일 찾아가 다정하게 말을 거는 곳은 바로 아내의 묘소입니다. 대답없는 아내에게 세상이 모두 이상하다며 투덜대고 어서 ‘당신 곁으로 가고 싶다’고 매일 말하죠. 결국, 회사에서의 해임과 함께 세상을 떠날 것을 결심한 오베.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집 안 천장에 매단 줄에 목을 걸거나 차에서 가스를 마시려하고, 또 자신의 얼굴에 총을 겨눠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의 거사를 방해한 것은 언제나 이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이웃들, 그들로 인해 그는 자신의 쓸모를 다시 발견하고 서서히 자존감을 되찾아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이웃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죠. 특히 도심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이웃의 집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려 말을 걸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집에서 혼자 숨을 거둔 노인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국가와 지자체가 더욱 적극적으로 독거노인을 살피는 사회적인 복지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부산시는 2018년부터 ‘고령자 대안가족 자활공동체 사업’을 실시해 왔습니다. 이는 독거노인들에게 지역사회 공동체 교육을 실시하고 대안가족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서 이웃과 노인이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독거노인들이 스스로 활기찬 생활을 모색하도록 돕는 정책입니다. 또 소득활동, 건강관리와 여가, 취미 생활 등의 소모임을 형성하며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스스로 찾도록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 사업은 2022년까지 이어졌고 공적 복지서비스에 ‘대안가족’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지원한 적극적인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혼자 사는 노인을 찾아갈 수 없다면 그들을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이러한 복지 프로그램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웃 주민과 연계하고 작게는 모임, 크게는 마을을 이루어 살 수 있는 연속성있는 정책도 필요하지요. 그 어떤 세대보다 자발성이 떨어지는 노인 세대에게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사회적 복지는 그 누구보다 절실합니다.   

   

영화는 홀로 사는 노인과 마을 사람에 관한 이야기지만 또 다른 복지 관련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고로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오베의 아내 소냐(이다 앵볼 분)가 교사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학교에 경사로를 만들어달라고 민원을 넣고 결국은 오베가 직접 경사로를 설치하는 장면, 정부산하 요양원 직원이 매번 찾아와 전신 마비의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오베의 이웃 루네를 강제로 요양원에 입소시키려는 장면을 보며 우리가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스웨덴에서도 복지문제로 여러 갈등을 겪기도 한다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아이 한 명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돌봐줄 이 없이 혼자가 된 노인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 아닐까요? 자신이 사는 거주지 근처에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고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이웃과 함께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독거 노인들이 죽는 날까지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될 것입니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 2019


사진 출처 : (주)디스테이션,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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