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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gomi Jan 23. 2019

고만고만 다재다능

잼고미의 세 번째 고민해보고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이 고민은 어디가 고민일까요? 고민이 좀 되는 고민이었는데, 그래도 곰곰 고민을 좀 해보고 나니, 고민이 될 수도 있는 고민인 것 같았습니다. (음. 그만. 이제 진지!) 


이럴 수 있을 겁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여건이 안 돼서 못하니 고민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 되는 그 여건을 꼼꼼히 따져보면서 어떻게든 기회를 쥐어짜 보고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럴 수 있겠습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정작 하는 건 하나도 없다. 이건 진짜 마음을 좀 따져봐야 할 일일 것 같습니다. 뭘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겁나는 것일 수도 있고, 얘기가 여러 갈래겠어요. 또, 이런 건 어떻습니까,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뭐 하나로 정할 수가 없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 들쑤시기만 하고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싶어서 하는 고민 말입니다. 얼마 전에 일본 작가 누군가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건 그중 하나도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했다는 글을 봤는데, 일리가 있다 싶으면서도 어딘가 밟힌 느낌이 들었거든요? 우리, 정말, 절실한 것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뭐 하나가 더 간절하거나, 뭐 하나가 특출 나고, 그 하나에 온전히 집중해야만 제대로인 걸까요? 그렇지 못한 지금은 어딘가 모자란 상태인 걸까요? 


이렇게 부연을 붙이니, 정말 고민스럽죠? 그래서 이번 보고서는 굳이 이 세 번째를 고민해 봤습니다. 고만고만한 다재다능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그 일본 작가와는 다른 관점을 말하는 잼고미 일화가 있습니다; 잼고미에게는 잼재료를 담아두는 과일 바구니가 있습니다. 바구니에 든 과일을 재료로 그날의 잼을 만들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잼고미는 뭐라 부르기도 뭣한, 고만고만한 들과일만 한 움큼 들어있는 바구니를 받게 됩니다. 바구니에 귤이 수북하면 귤잼, 딸기가 가득하면 딸기잼, 그렇게 뭐라도 될 텐데, 고만고만한 들과일 한 움큼은 무슨 잼이 될지 좀 애매할 법도 합니다. 그런데, 잼곰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오 이거 특별한 잼이 되겠는데?" 그리고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런저런 들과일을 들었다 놨다 눌러도 보고 향도 맡고 그럽니다. 친구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합니다. 그렇게 좀 추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갑니다, 고만고만한 들과일 한 움큼, 그걸 그대로 갖고요. “새로운 잼 이름이 필요하겠군!” 신난 듯 혼잣말을 합니다 

제일 멋진 건 잼고미의 첫 반응입니다. 제 생각엔 제일 중요하기도 합니다. 잼고미는 바구니 속에 들과일을 보면서 이게 귤인지 딸기인지, 잼이 될 과일인지 아닌지를 요리책 분류에 끼워 맞춰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고만고만한 들과일인 채로, 이런저런 여러 가지 섞인 채로, 그 나름의 무엇으로 봅니다. 그러니 잼고미는 그 재료가 흥미롭습니다. 굳이 대입해 보자면, 유용하다고 검증된 것 하나에 특출 나지 않은 나의 소소한 다재다능을, 기성의 가치 기준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나의 그 자산을 부족하거나 어긋난 것으로 보지 않고 그저 다른 것으로, 또 다르니까 특별한 것으로 보는 태도가 되겠네요. 이런 태도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건 난감하기보다는 흥미롭고 특별한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그 '너무 많은' 상태를 지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산된 관심을 하나로 모으라 다수의 조언은 그것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이고, 그러니 현실적으로 유용하겠죠. 잼고미도 보세요, 들과일을 하나하나 들었다 놨다 재보고 살펴보면서 나름 추려봅니다. 우리도 그 '너무 많은 하고 싶은 것들'을 재보고 살펴서 추려낼 필요는 있습니다. 왜 하고 싶은 것인지, 내가 할 만한 것인지, 내가 가진 다른 면들과 조화로운지 등등, 생각도 하고 시도도 하면서 좀 추려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추리기 과정의 전후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은, 앞서 말한 대로, 판단하지 않고 보는 태도겠죠? 그래야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관심과 재능을 하나하나 제대로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살펴보며 추릴 때도, 또 추리고 난 후에도, 그 결과물을 기성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할 겁니다. 고심하며 추려보고 나서도 여전히 내 바구니는 들과일 한 움큼이면, 그것의 가치를 봐주면서 그다음의 행보를 해 보는 거지요. 기대를 갖고.  


그러기에 최근에 주목을 끄는 다재능자(multipotentialite)라는 개념이 도움될 것 같습니다. 검색하면 관련한 책이나 강연들도 많습니다. 대체로, 관심사가 다양해서 이런저런 걸 동시에 여럿 하고 있는 것 또한 그런 그대로 온전한 유형이라고 지지하면서, 재능들이 겹치는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거나, 한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과 곧이곧대로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등의 조언도 담고 있어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고민인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도움이 될 겁니다. 저는 '다재능자'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 자체에 혹했습니다. 기성의 개념에 없는 것은 새로운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제대로 구현하는구나 싶었거든요. "흠,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군!" 한 거겠죠, 잼고미처럼요. (이런 거 보면, 잼고미 좀 멋진데...! 근데 지는 그걸 몰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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