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액션영화나 복수극이라기보다 '인간이 희망을 잃지 않을 때'를 보여주는 한 편의 시라고 생각했다. 광기가 서린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제정신일까. 같이 미치는 것이 제정신일까. 인간이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가장 낙담한 순간은 영화 <가여운 것들>을 본 내가 제일 가여워진 순간이다.반년 넘게 기다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묵직한 질문은내게 고역에 가까웠다. 아직도 소중한 주말 밤을 그렇게 꺼림칙한 영화와 함께 보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면 그 일을 상쇄할 만한 올해 최고의 작품이 두 편 있었다. 하나는 젠다이야가 출연한 <챌린저스>, 현대판 <모순>이라 부를 수 있는 남녀의 고민을 세련되게 다룬 영화였다. 또 하나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Furiosa: A Mad Max Saga, 2024)>다. 팝콘쟁이인 내가 손에 팝콘대신 심장을 부여잡고보게 된 영화. 다음날 몸살이 날 정도로 전율이 가득했다.
'퓨리오사'는 전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다. 빌런 임모탄 조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여전사로 나온다. 영화에는 상징적 요소가 상당하다. 종교와 신화를 오마주한 연출, 황무지에서 펼쳐지는 호쾌한 액션에 더해진 캐릭터의 서사 등 곱씹어볼 만한 장면이 많다.
조지밀러 감독은 “무너지는 세상의 잔혹함에 우리는 무엇으로 맞서야 할까요.”라는 명제를 영화로 풀어낸다. 감독의 물음은 박노해의 <너의 하늘을 보아>에 수록된 시와도 일맥상통한다.
현실이 우리를 배반할지라도 / 시대가 우리를 외면할지라도/ (… 중략) 어둠 속에서도 내 눈동자는 빛나기를/ 고난 속에서도 내 마음만은 푸르기를
인간의 역사는 끊이지 않는 전쟁의 역사고, 종말의 세계에서도 전쟁은 마치 필수적인 역사의 수순처럼 인간의 삶을 짓이긴다. 매드맥스 전편이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물었다면, 이번에는 '희망'을 보다 구체적으로 묻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극 중 대사가 30개도 되지 않은 주인공 안야 테일러 조이의 눈빛이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이끌어 간다. 굴지의 고통이 가미될수록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푸르게 빛났다. 마치 황무지 속 녹색의 땅처럼. 현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강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