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윌마 Jan 02. 2024

어느 신부님의 앞치마

마음을 나누는 일은 매일매일 자신을 경작하는 일이다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5660

     

  성남 쪽방촌 어느 반지하. 들어서자마자 깜깜한 어둠을 뚫고 냄새가 밀려온다. 곰팡이와 지린내. 말이 안 되는 냄새였다. 감당할 수 없는 곳에서 젊은 신부님은 평생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세웠다. 가난한 사람을 찾아 낮은 곳으로 향하자. 안나의집 김하종신부의 삶을 바꾼 냄새 이야기다. 신부님은 그 냄새를 극복했을까?


  인문공동체 책고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전국 9개 권역 12개 시설에서 170여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총 100여 회 강연에 강사만 38명이 손발을 보탰다. 피날레는 강의에 참여한 노숙인들과 함께한 순천 여행이었다. 강의실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자는 취지였다. 콧바람 쐬었다는 한 여행자의 무심한 소감은 순천 여행을 수식한 거창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휴게소에서 버스 기사와 커피를 마시며 통성명을 나눴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버스 기사가 툭 물어왔다. “뭐 하시는 분들이세요? 오면서 내내 궁금했어요.” 노숙인이었고 지금은 시설에서 숙식하면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분들이라고 답해드렸다. 버스 기사는 속마음을 그대로 알려줬다. “노숙하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 가요. 사지 멀쩡한데. 일을 해야지. 말이 되지 않아요.” 노숙인을 향한 시민들의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삶에 대한 내밀한 확신은 정해진 답을 알거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무슨 계시처럼 한 순간에 얻는 깨달음도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산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걸. 노숙인은 지금, 이 순간 희망이 사라진 사람들이다. 곤경에 처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뭘 해보겠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세상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마저 생기지 않는다.


  신부님은 그 냄새를 극복했을까? 무심코 나온 이 같은 물음에 나는 익숙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겪으면 나를 지키려고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방어기제였다. 눈앞의 상황이 두려운 나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을 찾는 체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순간 지금의 나는 그동안 만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둘러보면 주위는 말로 표현 못 할 일들로 가득하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을 인간의 사고로 이해하고 극복하겠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하물며 당신이 변해야 한다거나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계도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만남은 상대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상대에게 희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나의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때 김하종 신부는 언제나 앞치마 차림이다. 신부님은 앞치마를 당신의 Identity로 여겼다. 앞치마를 입는 과정은 ‘나는 봉사자’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일종의 세례 의식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신이 가야 할 길을 밝혀준 스승이었다.


  신부님은 말이 안 되는 냄새를 극복하지 않았다. 그 냄새를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무엇보다 당신 자신을 다짐하는 출발점으로 삼았다. 햇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의 퀴퀴한 냄새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공감의 깊이는 다르다. 마음을 나누는 일은 매일매일 자신을 경작하는 일이다. 재료는 충분하다.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바로 사랑이다.


  노숙인들과 순천시 그림책도서관에 들렀다. 여행에서 만난 순천 사람들은 그램책도서관을 말할 때 눈빛이 빛났다. 그림책도서관은 즐거운 그림책 놀이터였다. 전시관에는 국내외 유명 그림책 작가의 기획 전시와 각종 체험, 그림책 인형극이 연중 펼쳐지며, 자료관에서는 국내 및 해외 수상 그림책 등 전 세계 다양한 그림책을 만나 볼 수 있다. 신개념 문화공간이랄까. 그림은 보는 사람의 경직된 사고를 부드럽게 해 준다. 그림 그 자체가 여백이 되어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 읽기를 돕는다. 그래서일까? 낙안읍성과 순천만습지를 바람처럼 걸었던 노숙인들은 원화 그림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그림 작가의 희망 노래에 마음이 동했던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밤은 무심한 동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