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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Oct 30. 2023

밤은 무심한 동무다

사소한 부탁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4531

<밤과 노인>, 1990, 장욱진(1917~1990)

개구쟁이 아이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지요. 아이 시절을 겪지 않는 노인 역시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부 묘사가 생략된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장난기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순수 그 자체의 해맑음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무와 까치, 산과 달은 함께 길을 걷는 동무지요. 동무는 관찰해서 재현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이좋은 풍경 같은 존재입니다. 어느 하나 어울리지 않은 게 없는 동무들 덕분에 제멋대로 자리를 잡은 비현실적 구도와 배치는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뒷짐 진 노인에게서는 아무런 사심(私心)이 보이지 않습니다. 삶은 꾸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림은 그래서 무심(無心)합니다.


무심함 사이로 밤이 흐릅니다. 하루는 자신의 하루를 밤이라는 그늘에 묻었습니다. 하루를 붙잡고 싶어도 밤은 맞이할 뿐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삶의 여정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밤은 심연처럼 어두웠던 겁니다. 아이들이 밤사이에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면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뼈에 녹아 있고 무의식이라는 밤에 담겨 있습니다. 모두 밤이 하는 일입니다. 화가 장욱진은 한순간이 아니라 면면히 쌓이고 흘러서 숨결이 느껴지는 밤을 그려냈습니다. 무심한 밤을 통해 아이와 노인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밤은 밤마다 내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의 하루를 물었고 사람을 궁금해했습니다. 나는 밤의 품에서 자랐습니다. 밤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지독했지요. 그럴 때면 하얗게 밤을 지새웠습니다. 답을 찾지 못한 밤은 어두웠고, 아무런 변화 없이 다시 맞는 밤은 더없이 잔인했습니다. 그런 밤을 수없이 보내고 아이는 노인이 되어 밤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뒷짐을 진 노인에게서 이제는 애착이나 회한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심한 듯 등으로 속내를 보이시던 당신처럼 노인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려는 걸까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은 언제나 애달픕니다. 어젯밤 꾼 꿈이 그렇지요. 무의식의 막을 뚫고 나온 삶의 무늬는 눈을 뜨는 순간 의식이 되지 못하고 흩어집니다. 차마 눈을 뜰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무늬는 슬픔이고 열망입니다. 동화 같은 그림의 이면에는 잡힐 듯 잡히지 않던 꿈이 담겨 있습니다. 뿌리를 적시는 물이어도 괜찮다, 나무를 깨우는 바람이어도 괜찮다 다독일 수밖에 없던 세월이었습니다. 실은 혼란스러운 시대의 장막을 찢어버리고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동무들과 어우러져 살고 싶었습니다. 파편으로 뒤덮인 세월을 딛고서 장욱진이 그려낸 삶의 무늬는 어떻게 이다지도 순수하고 포근할까요? 나는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운 상황을 무색하게 만드는 화가의 심성이 궁금합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밤과 나눈 대화는 결국 나의 위치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고갱이 순수의 삶으로 돌아가 던졌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 물음말입니다. 우리는 늘 자신의 위치를 찾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실패합니다. 무심한 듯한 노인의 바람은 그래서 사소한 부탁입니다. 어쩌면 노인의 등 뒤로 보이는 무심함이 진정한 부탁일지도 모릅니다. 무심하게 함께 한다는 것은 인간관계가 닿을 수 있는 궁극의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평생의 동무는 허리춤을 붙잡고 늘어진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산, 까치, 달, 집,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남습니다. 그토록 두려웠던 밤이 사실은 자신을 품어준 무심한 동무였다는 것을 인생의 산을 다 넘은 다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장욱진은 밤을 그리는 동안 수많은 저항을 경험했습니다. 붓에서 느꼈던 저항은 ‘산만한 외부 형태들을 나의 힘으로 통일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 저항이 무심한 동무처럼 느껴질 때까지 장욱진은 캔버스와 치열하게 부딪혔습니다. 장욱진은 밖으로는 맑고 순수한 세계를 펼쳐낸 따뜻한 춘풍(春風)이었지만, 안으로는 자기 자신이 무심히 함께 해준 동행이었는지를 묻는 냉엄한 추상(秋霜)이었습니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상향을 꿈꾸는 장욱진의 <밤과 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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