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물 들어가는 추상을 상징하는 미술관과 현장에서 생동감을 직시할 수 있는 동물원을 사이에 두고 갈림길에 선다. 한 사람은 왼쪽으로 미술관을, 다른 사람은 오른쪽으로 동물원을 향한다. 서로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 같지만, 둥근 지구 위에 사는 이상 길은 다시 연결된다. 저쪽이 싫다고 이쪽을 선택해 걷다 보면 그 끝은 내가 눈길도 주지 않았던 저쪽의 시작이다. 저쪽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움트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이해하기 힘든 장면을 만나면, 사람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낯설게 바라보려고 한다. 이해되지 않는 그림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삼독(三讀)이 있다. 그림을 읽는다면 화삼독(畵三讀)이다. 그림을 읽고, 작가와 그 시대를 읽고, 마지막으로 나를 읽는 것이다.
그림을 세 번 읽다 보면 미술관인데 동물원에 온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미술관에서 만난 그림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황금물고기>다. 동화 속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림이다. 클레는 꿈과 동심의 세계를 환상적 색채로 표현한 화가다. 클레가 황금물고기를 그린 배경을 밝히지 않아서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를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