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눈 Jul 09. 2019

제노비스를 위하여

이건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야

 종강을 맞이하고 나면 좀 편할 거라 생각했지. A는 정신없이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생각한다. 정리한 참고문헌 목록을 확인하고, 페이지 다운 버튼을 연타하며 읽어야 할 논문을 거의 눈에 바르고 있는데, 같이 사는 동생이 좀 씻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사실, 7월의 더위내내 땀을 흘려서 좀 찝찝하던 참이다. 어쩔 수 없지. 씻고 나서 마저 써야겠다. 곧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쏟아지고, 샴푸를 짜서 머리카락을 박박 문지른다. 머리카락에 덕지덕지 묻은 졸음과 게으름과 어리광도 씻겨져 내려가는 느낌이다.


샴푸와 바디워시. 우리의 일상이 파괴하는 소소한 예일 뿐이다.


 부지런한 B는 아침에 일어나 씻고 실험실에 출근했다. 함께 공부하는 실험실 동료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네고, 실험을 진행한다. 한참 바쁘던 참에, 문득 실험복의 소매를 보고 오늘은 빨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퇴근하면서 실험복을 종이 쇼핑백에 담아 집으로 돌아간 뒤, 오늘은 시간이 그리 늦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세탁기 문을 연다. 실험복과 빨아야 했던 옷가지를 넣고 세탁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넣는다. 세탁기 문을 닫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세탁기가 힘찬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빨래. 샴푸와 바디워시와 마찬가지로 계면 활성제를 사용하는 파괴의 일상이다.


 여타 수많은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C의 가장 큰 고민은 오늘 점심 메뉴이다. 눈으로는 모니터를 보고 손으로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와중에 머리로는 회사 근처에서 자주 가는 식당들과 메뉴들의 이름을 쭉 나열하고 서로 비교하며 고민하고 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C에게 친한 직장 동료 D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점심에 이 앞에 새로 생긴 가게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샐러드랑 샌드위치가 맛있다고 그러던데.


 그렇게 점심시간에 C와 D는 함께 근처에 새로 생긴 가게에 들어갔다. 이제 막 생긴 가게라 그런지 아직 시간이 조금 빨라서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은 가게 내부를 둘러보다가, 햇빛이 잘 드는 적당한 구석 자리를 찾아 거기에 앉았다. 커다란 유리창에서 햇빛이 쏟아지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내부를 구경하며 D와 함께 수다를 떨며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곧 맛있는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가 등장한다. 와! 사진 찍어요! 오늘의 메뉴는 아보카도 샌드위치와 새우 샐러드.


아보카도. 맛있고 영양가도 높지만 물 소비량 역시 어마어마하다.


 점심을 먹고 C와 함께 회사에 돌아온 D는 집에 일찍 돌아와 짐을 챙겼다. 내일부터 출장이다. 뭐 빠트린 건 없겠지? 커피를 마시며 필요한 자료와 짐을 정리하던 D는 문득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루고 싶지만, 내일부터 3일간 지방에 있을 예정이라 미룰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이 쌓인 싱크대로 향한다. 일어난 김에, 이 컵도 씻어야겠다.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고무장갑을 낀다. 달그락 달그락 그릇 부시는 소리가 부엌을 채운다.


설거지를 하는 일상에서도 우리는 세제를 쓴다.(ⓒ여름눈)




 특이할 것 없는 일상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것을 파괴한다. 계면 활성제가 잔뜩 들어간 거품으로 몸을 씻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는 동안 물고기들은 숨을 쉬지 못하고 죽는다. 합성세제의 성분은 미생물에 의해서도 잘 분해되지 않으며, 수면을 얇은 막 성분으로 막아 하천에 빛과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도록 한다. 산소와 빛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물에 사는 수생식물들과 조류는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 결과 전반적으로 산소와 영양분이 부족한, 생명이 살기 어려운 죽음의 물이 된다.


 게다가 합성 세제에 들어있는 인산염으로 인해 하천에 부영양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식물성 플랑크톤이 지나치게 번식하게 된다. 그 결과, 적조나 녹조 현상이 일어나 하천에 영양소와 산소가 극단적으로 부족해진다. 종류와 크기를 불문하고 엄청난 수의 물고기들이 죽음을 맞고, 각종 식물성 플랑크톤과 거품과 찌꺼기로 뒤덮여 하천은 점점 썩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물에 조류 찌꺼기가 남아있다면 정수 과정을 거치더라도 맛과 냄새가 이상해지고 먹은 사람에게 복통을 유발하게 된다.


 결국은 우리의 일상 역시도 파괴된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일상도 사라진다. 위에서 C와 D가 먹었던 아보카도를 보자. 현재 SNS에서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는 과일이고, 중국에서도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아보카도 나무는 물을 엄청나게 흡수한다. 기사에 따르면, 아보카도 농장을 재배하기 위해 거대한 숲이 사용하는 물의 2배 정도를 소비해야 한다는데, 이 아보카도를 위해 칠레나 멕시코 등 중남미 일부 지역은 가뭄을 버텨야 하는 셈이다.


 사실 글은 이렇게 쓰고 있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일상적인 파괴의 순간이 너무나 익숙하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텀블러를 들고 나가야지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블티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결국 플라스틱 컵에 담긴 음료수를 책상 옆에 놓아둔 참이다. 우리 모두 이미 익숙한 일상을 포기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과제였지만, 점점 해야 하는 말이 많아져서. 매거진 내내 누군가에게 경각심을 주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심어준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 글은 우리 자신에게 쓰는 글이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글이다. 완전히 바꿀 수는 없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바꿔나가고 싶은 일상에 의지를 심어주기 위한 글이랄까. 그래서 쓴다. 일상에서 보여주고 싶은 색다른 풍경과 좀 더 넓은 시야를 보여주기 위해서. 어쨌거나,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이 아름다운 광경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아주 작은 몸부림이야.




연합뉴스, 2018. 04. 08 '[카드뉴스] 아보카도 많이 먹으면… 생산국 산림 파괴되고 가뭄 오나요'

https://www.yna.co.kr/view/AKR20180403123500797


Copyrightⓒ2019 에코, 크리, 에이, 티브 all rights reserve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