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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프롤로그

by 정작가


영화 <부산행>은 우리 영화사에서 드물게 좀비가 등장한 작품이지만 우려를 불식시키고 천만 관객 돌파라는 흥행신화를 썼다. 후속 작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즈음, 넷플릭스의 <킹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소위 미드 형식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인데 그것이 한국 작품이라는 것에 좀 놀라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기야 BTS가 전 세계의 유명한 스타디움에서 열광에 휩싸인 것도 몇 년이 된 걸 보면, 몇 년 전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꺼번에 상을 독식했던 저력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킹덤>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은 강렬하다 못해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그 이야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푹 빠졌던 것 또한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가 그렇게 좀비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저력이 있었나 하고 의문이 들 정도로 드라마의 작품성은 뛰어났다.


사실 한국 최초로 좀비영화가 탄생한 것은 45년 전인 1980년이라고 한다. <괴시>라는 제목의 영화는 좀비물을 표방하긴 했는데 조지 모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시체들의 새벽>처럼 ‘좀비’ 열풍에는 크게 못 미쳤던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때 한국 영화를 보는 것이 수치인 것처럼 느껴졌던 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을 보면 오히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못지않은 탄탄한 스토리와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는 경우가 많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문화는 벌써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는 지점에 와 있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콘텐츠는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다.


<킹덤>의 시작 장면은 인상적이다. 역병에 걸린 왕을 치료하는 콘셉트로 제작된 장면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연기, 염, 사체, 흉배, 약초, 뜸, 탕약 등은 드라마 속에 숨어있는 보물 찾기처럼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는 쉽게 유추할 수 없다. <킹덤>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극이지만 흔히들 공중파에서 방영하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역병에 걸린 왕은 그저 주변인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존재감이 없고, 갈수록 세를 불리며 늘어나는 좀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행렬은 몰아치는 폭풍우처럼 거침없는 질주를 동반하며 오히려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생사초는 개연성을 살피지 않아도 저절로 공감이 간다. 인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추악한 탐욕과 본성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원천이 된다. 한국 영화에서 금기시하던 것들, 이를테면 인육, 살인, 사체, 좀비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영상 속에서 처연히 노출된다. 뎅강 목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본다는 것이 낯설지 않을 만큼 무수한 살생의 장면들이 여과 없이 화면을 물들이고 있다.


지엄하신 왕과 세자저하는 그 권위와 체통을 잃었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는 세자와 외척 세력을 등에 업고, 조선을 제 손아귀에 넣으려는 탐욕스러운 고위관료는 오히려 대척점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권력을 쥐려는 욕망 앞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위치가 따로 없다. 역병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자들은 현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다르지 않다. 군주는 백성을 섬길 때에만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는 드라마 속 세자의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위정자들이 새겨야 할 진리가 아닐까 싶다.


<킹덤> 시즌1은 베일 속에 가려진 왕의 등장, 좀비가 탄생하고 본격적으로 역병이 퍼지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비밀을 찾아 길을 떠나는 세자 일행과 이를 추적하는 조정에서 파견된 자들의 추격전은 덤이다. 무능한 관료들과 오히려 이들을 선도하는 민중들의 역할이 시대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좀비들의 습성을 알게 된 세자 일행은 과연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밀려드는 좀비들의 추격을 어떻게 따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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