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광 / 전나무숲
우선 이 책을 처음 접하면서 느낀 것은 선뜻 읽고 싶은 충동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술이 인생을 망친다’는 제목부터 부정적인 어감이 영 꺼림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술에 관련된 책까지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정관념도 한몫 작용했다. 하지만 이 책을 골랐다는 것은 그만큼 술에 대한 폐해를 인정했다는 것이고, 비록 책을 통해서나마 음주 습관을 개선해 보려는 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이 한 권의 책이 주는 의미는 예상외로 클 것이다.
술의 폐해는 굳이 이런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건강, 시간,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술은 시급히 끊어야 할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도 술을 끊지 못하고, 그 폐해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많겠지만 보편적으로 인정할만한 이유로 우리의 음주 문화를 꼽을 수 있다. 지금이야 회식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회식하면 술이라는 방정식이 성립될 정도로 술은 우리의 의식을 점령한 지 오래다. 나 또한 술로 인한 폐해를 알고 있다. 그만큼 술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런 책까지 보면서 음주 습관을 개선하려는 열의(?)를 보일까?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다 옳다.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쁜 음주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은 술의 폐해를 몰라서가 아니라 실천 의지가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음주의 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팁은 없을까? 물론 이 책에는 저자의 독창이 주장이 담겨있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주창하는 PPR기법이다.
PPR기법은 최악의 상황 기억하기, 현재의 상태 느끼기, 자신에게 보상하기의 영문이니셜을 조합하여 명명한 기법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세 단계를 통해서 우리는 음주의 유혹을 이기고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내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최악의 상황 기억하기’이다. 술에 취한 최악의 상황을 기억하고 되뇌다 보면 현실의 상황에서는 몸서리쳐지고, 다시는 기억하기 싫을 만큼 아찔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최악의 상황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 이런 기법은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술을 마시면서 절주 한다는 것은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내가 담배를 끊은 이유도 흡연량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술도 적당히 마시고, 즐긴다면 굳이 이런 책을 읽고 각성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술의 폐해를 알고, 이를 고쳐 보려고 노력하는 이가 태반일 것이다.
사회생활 때문에 아니면 다른 이유로든 술을 아예 끊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PART 4. 술 때문에 망가지는 자신을 구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1차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라
- 폭탄이 되지 않으려면 폭탄주만큼은 피하라
-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
- 수다를 떨면 만취는 막을 수 있다
- 절대로 혼자서 마셔서는 안 된다
- ‘확실하게’ 거절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중에서 요즘 들어 내가 주로 적용하여 효과를 보고 있는 방법이 1차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라
는 방법이다. 술에서 1차는 2차는 부르고, 2차는 3차를 부른다. 그러다 보면 블랙아웃으로 가는 것은 기정사실화 된다. 1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라. 피할 수 없다면 1차에서 술을 마시되 아주 소극적인 방법으로 마시면 된다. 소극적으로 술을 마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안주 든든히 먹고 술 마시기
- 물 많이 마시기
- 화장실 가서 세수 한 번 하고 오기
- 폭탄주 마시지 않기
아마 위에서 제시한 방법만으로도 최소한 만취에 이르는 일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술이 인생을 망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술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또한 나의 음주 습관은 어떤 것인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도 있다. 다행히 이 책에서는 ‘알코올중독 진단 테스트’라는 항목에서 자신의 음주 습관을 평가할 지면을 제공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마도 테스트하는 사람의 십중팔구는 알코올중독자로 진단 결과가 나올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그만큼 우리의 음주 문화가 관대함을 반증하는 자료로서 충분하다.
‘술을 지배하는 절주의 달인’ 코너에서는 건강을 지키는 회식 음주법이라는 제하에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제시한 것을 다 지키면서 술을 마시기란 그리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술을 마시는 데 있어서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다. 오늘 마시는 한 잔의 술이 과연 내일에 미칠 파장은 무엇이고, 내 인생에 미칠 파장은 무엇인지만 염두에 두어도 무작정 술에 취해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회식을 핑계로, 친목 도모를 이유로 많은 술자리를 가져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술자리가 즐겁기보다는 고역으로 변한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도 그런 느낌은 가중될 것이다. 진정한 술꾼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냉정히 술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술로 인해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술버릇이 쉽게 고쳐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술의 폐해를 경험하고, 절실하게 술을 끊고자 혹은 절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읽고 그런 의지가 더욱 강고하게 자리 잡을 기회로 삼겠다면 말이다.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막상 술을 끊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 같긴 하다. 당시만 해도 금주가 절실했기에 책을 통해서라도 의지를 다져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다행히 이 책을 읽고 난 후, 1년 뒤부터 금주를 실천했으니 전혀 영향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겠다. 한 권의 책이 가져다준 선한 영향력을 몸소 실천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