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예진
이번 회차의 첫 장면은 지난 회차의 마지막 장면이 이어져 정조가 두 화인들에게 부친(사도세자)의 예진을 찾아달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한 시퀀스에 극 분량의 1/10 정도를 할애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 장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진을 그려봤으며 *추사를 할 수 있는 최고의 화원, 하여 두 사람에게 명한다. 대화원이 남긴 내 부친의 유일한 흔적, 예진을 찾아다오. 지금 과인의 기억 속의 부친은 너무도 희미하여 세월이 지나면 영영 지워질지도 모르네. 그러니 부디 과인의 부친을 되살려 주게.”
두 화원에게 명하는 이 대사는 정조의 애절한 심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들을 신뢰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대사가 설명조라서 극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느낌도 없진 않다.
김홍도의 스승인 강수황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잠시 스쳐가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신윤복의 친아버지인 서징의 죽음 또한 김홍도의 내레이션 형식으로 다시금 그 비극성을 부각한다. 극의 흐름은 정조의 밀명을 받은 두 화원의 행보를 통해 의문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버지의 목소리로 그림을 찾게 되는 신윤복. 그가 찾아낸 두 편의 그림은 다소 작위적인 설정의 결과라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행동의 당위성이 극에서 인과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과학적인 흐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강수황의 아들(강유언)을 찾아 나선 김홍도와 신윤복. 이 장면은 오로지 강유언의 됨됨이를 그려내는 관점에서 전개된다. 강유원이 못된 인물이라는 설정치고는 지나치게 예의가 바른 것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마치 기다리고 있다 강수황의 밀지를 전해주는 늙은 종의 행동 또한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밀지를 전해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앞선 장면을 설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의 배치는 인위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는 극의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흐름에 의존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장면을 볼 때, 시청자들은 극이 급조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구성이 느슨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이유 때문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두 화원의 실제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번 회차에서는 신윤복의 작품인 <청금상련>이 그런 의미를 배가시킨다. 일종의 양반들의 유희를 다룬 이번 작품은 신윤복과 정향의 해후 속에서 탄생한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는 신윤복과 가야금을 타는 정향의 표정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들만의 밀어는 완성된다. 2008년 SBS 연기대상에서 문근영과 문채원이 동성으로 최초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이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처럼 세심한 감정선과 표정 등으로 연기했던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불필요한 장면은 없다. 스승님이 붓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신윤복의 대화, 도화서 화원 친구로부터 신윤복이 계부에 의해 팔려 가듯 개인 서화로 넘겨진 상황을 듣는 김홍도, 김홍도의 방문을 고해바치는 강유원에 이르기까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점철된 극의 흐름은 시청자가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파편화되어 있다. 이는 드라마라는 장르의 한계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예진>에서 부각하는 인물은 호조판서인 김명륜이다. 김명륜의 과거 행보는 두 화원이 좇는 10년의 궤적에 실마리를 풀어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도화계의 법도를 내세우며, 두 화원의 사화를 유도하는 장면은 과거의 비밀이 드러날 것임을 암시한다. 이는 극의 흐름을 극적으로 전개시키는 그의 가치를 더욱 배가시킨다.
소설과 같이 드라마에서도 복선은 향후 전개될 극의 내용을 예측하는 단서가 된다. 호조판서의 마당에서 아이와 잠시 부딪쳤던 신에서 김홍도가 내뱉는 대사 또한 극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무슨 애가 저렇게 무뚝뚝해.”
이 대사는 그대로 화사로 이어져 김홍도가 아이를 웃게 하라는 화제(畫題)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한다.
“데리고 다니는 연유가 있구먼”.
김명륜의 이 대사 또한 신윤복이 스승인 김홍도가 붕대를 감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기 위해 붓을 감싸 쥐어주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동반자의 관계로 상승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드라마에서 한 마디의 대사를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향후 전개될 극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15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