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람의 화원 (13회)

생과 사

by 정작가


이번 회차에서는 신윤복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생환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어진화사에서 어진을 찢은 혐의로 옥에 갇히게 된 신윤복은 참형에 처할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김홍도는 정조에게 그간의 일을 고해바치고, 어진화사에 방해를 놓은 이들의 음모를 밝힌다. 김홍도가 제자를 위해 오른손을 훼손한 사건은 어진화사의 진실과 겹쳐 정조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런 사실만으로 정순왕후 세력을 제압하기 힘들었던 정조는 찢어진 어진을 신하들이 흔히 드나들던 길목에 배치하여 그들을 시험한다. 여기에서 솔로몬의 지혜는 빛을 발한다. 어진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의 논리를 들어 신윤복을 참형에서 구하는 대목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게 하는 통쾌한 장면이다.


드라마에서 화면이 오버랩되는 장면은 종종 사건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이번 회차에서도 옥에서 신윤복이 간장 종지를 보며, 새 장 속에 갇힌 그림을 그렸던 장면을 기억하는 부분은 그대로 정향이 현재의 시점에서 새 장 속의 새를 바라보는 장면과 이어진다. 정향이 새 장 속의 새를 한 마리 날려 보내는 장면은 심경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준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한 배경에는 스스로 마음속의 정인이라 생각했던 신윤복과의 심적 정리를 끝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의문점은 이미 참형이 결정된 상황에서 김조년과의 화해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신윤복의 예정된 죽음을 인정하고, 체념의 길을 택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생과 사>에서 가장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장면은 신윤복이 참형을 당하기 전날 밤. 김홍도가 옥에 찾아와 신윤복과 대면하는 신이다.


“스승님께 저는 무엇이었습니까? 좋은 제자는 아니었지요?”

“너는, 너는 제자 그 이상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여기서 스승과 제자가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은 마치 연인의 모습처럼 비친다. 스승과 제자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실제로 남남의 관계였다면 오히려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신은 극 중에서도 김홍도가 신윤복을 이미 연인으로서 받아들였던 측면이 크다. 신윤복 또한 그런 스승과 연인으로서 그와의 이별을 아파했는지도 모른다.


서소문 앞, 맨발로 형장으로 끌려가는 신윤복은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걸어가다 스승의 모습을 바라본다. 여기서 이어지는 장면은 정조가 대신들과 논쟁하는 과정과 동 시간에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시간의 간극은 분명 존재한다. 드라마에서는 시청자의 관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시차의 발생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존재하지만 때론 그런 것들이 논리적으로 부합되지 않을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도 그런 불합치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정조가 우의정에게 억울하게 죽어가는 죄인을 구하지 못한다고 엄포를 놓는 장면이 그대로 이어지며 바로 죄인을 방면하라는 어명이 전달되는 시점은 그런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보여준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런 시차보다는 신윤복이 살아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두겠지만 그런 장면이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회차에서 그림의 진정한 의미를 톺아보는 대화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김홍도가 정조에게 아뢰면서 신윤복이 어진을 찢은 것은 혼이 담긴 그림을 모독했던 이들에 대한 분노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성토하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신윤복과 김조년과의 대화에서도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어야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조년은 그런 수준을 결국 돈과 치환시키지만 예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눈으로 신윤복을 맞아들인 것은 장사꾼의 관점에서는 탁월한 선택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신한평이 김조년과의 거래에서 신윤복의 거취를 결정하는 장면은 그가 그토록 가문의 영광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일들이 개인적인 욕망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겉으로는 화인의 가문 운운하지만 이는 결국 개인의 희생을 통해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조선시대 비뚤어진 유교관의 전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한평이 어진 사건으로 신윤복과 부자의 연을 끊겠다고 하는 장면을 보면, 부자간의 관계보다는 가문의 명예를 우선 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로 신한평이라는 캐릭터는 물신화된 당시의 풍조를 반영한 전형적인 인물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신한평과 신윤복의 관계가 비록 형식적으로는 부자지간이지만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신윤복이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당위성에 기인한다. 애초에 그런 관계설정으로 맺어진 관계가 효용성을 다하지 못할 때 관계는 단절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홍도가 신윤복에게 낙관을 주며 해원이라는 호를 부여하는 신은 스승과 제자로서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호나 이름은 독립적인 존재를 증명하는 길이었다. 여성이나 종의 신분을 가진 이들이 호칭을 부여받지 못했던 것은 그 존재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여기에서 김홍도가 예인으로서 신윤복에게 해원이라는 호를 부여해 준 것은 수평적인 관계로서 그의 존재가치를 인정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김홍도가 오랜만에 신윤복을 대면하면서 호를 불러준 것은 그 존재가치를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정조 또한 신윤복이 어진 사건으로 도화서를 떠난 과정을 오히려 더 넓은 세상에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운명적 존재로서 해석하고 격려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조가 두 화원에게 ‘병진년 사라진 사도 세자의 예진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그들이 한 운명체임을 확인하는 과정임을 잘 드러내준다.


☞ 14회 계속

keyword
이전 12화바람의 화원 (1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