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심
봉심은 어진을 품평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번 회차는 이런 봉심이 극의 핵심 축을 이룬다. 권력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어진화사를 기획한 정조와 이를 수행한 두 화원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정순 왕후를 위시한 외척 세력들의 구도가 명확한 대비를 이룬다. 당시 어진화사라는 국가 중대사 앞에서 과연 예인들은 어떤 식으로 권력의 희생양으로 자리하는지 드러난다. 신영복의 희생은 새로운 염료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희생되었고, 신윤복은 그런 형의 희생을 폄하하는 세력들과 대결에서 어진을 찢고 참수형에 처할 위기에 빠진다. 김홍도는 그런 신윤복을 구하기 위해 자기 손을 불 속에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조선조 왕이라는 최고 권력이 실제로는 그에 상응하지 못한 취약한 기반에 서있다는 사실이다. 정조가 어진화사를 통해 권력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과정조차도 순탄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상징적인 장면은 도화서 별제인 장벽수가 오히려 권력의 실세에 줄을 대고 왕을 위기에 빠트린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자기 아들을 도화서 최고 화원으로 키우겠다는 욕망의 발로였지만 이 또한 권력의 실세는 왕이 아닌 외척 세력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권력이 절대적인 상황이었다면 그가 했던 행위는 대역죄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스스럼없이 행하는 것을 보면 당시 권력의 핵심이 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 비극의 심상을 나타내는 방식은 배경음악과 인물의 표정, 행동 등을 통해 표출된다. <봉심> 편에서도 아들을 잃은 아비의 슬픔은 신한평 역의 안석환 배우의 연기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극의 첫 장면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카메라는 누군지 모를 버선발의 도포자락을 잡다 점차 방향을 올려 한 인물을 비춘다. 윤복의 아버지이기도 한 신한평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몸을 한 바퀴 돌려 방 한쪽에 누워있는 누군가를 향한다. 흰 천을 덮어놓은 것으로 보아 죽은 아들인 영복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슬픔은 절제되어 있어 상실의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흰 천을 제치고, 드러난 아들의 얼굴을 대하는 장면에서는 북받치는 설움을 주체할 수 없는 연기로 인해 점차적으로 고조된 슬픔의 정서를 확장시킨다. 이를 질끈 깨문 듯하며 눈을 뜰 수도 없이 오열하는 장면은 슬픔을 더욱 절정으로 몰아간다. 한 톤 낮아진 색채의 영상에서는 영복의 죽음이 어진화사에 쓸 안료로 인해 기인한 것임을 알려준다. 오열하는 신한평.
김홍도와 신윤복은 봉심에 대비해 어진에 대한 설명을 준비한다. 주상 전하의 부름에 나가는 김홍도의 관모에서 머리 끈이 떨어진 것을 발견한 신윤복.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화방으로 가 뭔가를 꺼내 들어 품에 안는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극의 전개를 예측하고, 의미를 파악하는데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번 회차에서도 김홍도 관모의 오른쪽 머리 끈은 장차 그가 어떤 위기에 닥칠 것임을 암시한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김홍도의 오른손이 불구 상태가 될 수 있음을 짐작케하는 것은 이런 장치로 인해 가능해진다.
정조는 자기가 세손 시절 쓰던 붓을 김홍도에게 내어주며 봉심에 잘 대비하라고 김홍도를 격려한다. 이 대목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조가 김홍도의 편에 설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기에게 의미있는 물건을 내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내어준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신윤복이 목숨을 구하게되는 것도 김홍도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시청자들은 이런 장면 속에서 후일에 어떤 방식으로든 왕이 김홍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신윤복은 밤길을 나서다 우연히 정자에서 대화하고 있던 화공들의 대화를 듣고 영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다. 신윤복이 달려가는 모습은 슬로모션으로 처리된다. 이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한 신윤복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윤복은 영복과의 일들을 회상하며 본가로 달려간다. 근조라 걸린 등이 있고, 상중임을 알려주는 젯밥과 촛불, 짚신이 보인다. 영복의 시신을 접한 윤복은 오열하며 곁을 지킨다. 뒤쫓아왔던 김홍도는 신윤복과 밖에서 대화를 나눈다. 형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을 하는 신윤복. 미안하다고 하는 김홍도.
정순왕후와 대화를 나누는 재상과 우상. 정조의 개혁을 막으려는 그들의 음모를 읽을 수 있다. 이들은 곧잘 모임을 가지고 현안을 논의한다. 마치 정조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측근으로 두고 그들에게 밀명을 내리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처음부터 이런 대결 구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왕권을 지키려는 정조와 실세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순 왕후의 승부를 건 싸움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긴장의 끈을 놓치못하게 하는 재료로서 활용된다.
봉심을 하러 궐로 들어가는 김홍도와 신윤복. 근정전에서는 어진에 대한 화평(봉심)이 이어진다. 정조는 함구한 채 대신들과 화원들 간의 대화를 경청한다. 어진을 유심히 살펴보는 대신들. 어진과 정조의 모습이 합쳐지는 장면은 화원들의 그림이 실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확증적으로 보여준다. 어진의 꼬투리를 잡으려는 대신들의 품평이 이어지고 김홍도의 대답은 논리적이고 간결하다. 이에 대신들은 더 이상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아 잠시 휴식을 청한다. 이들은 주사(붉은색을 내는 안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로 결심하고, 공격을 이어간다. 죽은 영복에 대해 모함하는 이야기를 듣던 윤복은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갑자기 어진을 향해 가서 그들을 향해 말한다.
“이 속된 색 속의 그림을 어찌 어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소인은 이 그림이 어진이 아니며, 이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이 주상전하가 아님을 알겠습니다.”
그렁그렁한 눈물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신윤복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어진을 두 동강 내어 찢어버린다.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 클로우즈 업되어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찢어진 어진 뒤로 분노에 찬 정조의 표정이 드러난다. 병사들에게 끌려 나가는 김홍도와 신윤복.
이 장면에서 신윤복이 어진을 찢는 장면은 다각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신윤복이 대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대신들에게 어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대신들이 부정했던 어진은 어진이 아니기에 훼손할 수 있다는 논리는 그가 대사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다음은 화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색을 선택하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당시 화단의 예인에 대한 위치를 성토한다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는 봉심 과정에서 드러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신분 질서에 대한 반발이다. 어진은 극에서 내레이션 형식으로 언급했던 것처럼, 왕과 동일한 위치를 부여받은 사물이다. 그림 한 장을 왕과 동일시할 만큼 왕조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세상에서 예인들이 권력자의 도구로 전락했던 당시 계급적인 상황을 부정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정조와 정순왕후의 대결 구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다. 권력의 반목 대결은 국가의 합치가 아닌 분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신들은 어진을 찢은 신윤복을 참형에 처하라고 간언 하는데. 도승지인 홍국영은 김홍도의 참형만은 막아달라고 청한다. 결국 김홍도는 도화서 화원 자격을 박탈하는 선에서, 신윤복은 사흘 뒤 서소문 밖에서 참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판결이 내린다. 이에 김홍도는 절규하듯 신윤복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외친다. 정조와 대면한 김홍도. 신윤복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마음을 돌릴 기색이 없는 정조의 단호한 모습만 확인하게 된다. 카메라로 클로우즈 업되는 김홍도의 두 눈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김홍도는 신윤복의 죽음을 어떻게 하든 막아보겠다고 나선다. 도화서 친구 화원인 이인문에게 스승과 친구를 그렇게 보냈는데 이 아이까지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하면서. 김홍도는 궐 앞에서 도포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석고대죄하면서 신윤복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외쳐댄다. 정조 또한 사군자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밤이 새도록 궐 앞에서 석고대죄하는 김홍도. 지나가는 대신들의 조롱을 듣는다. 이런 사실을 정조에게 전하는 도승지 홍국영. 사태를 잘 주시하라고 명을 내리는 정조.
다시 다가온 밤. 김홍도는 여전히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 대신들은 석고대죄하는 김홍도의 진심을 조롱하며 그의 감정을 자극한다. 그런 그들의 뒷전에서 김홍도는 말한다.
“정녕 진심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단 말씀 이십니까? 진심이라는 건 모르고 계시는 것 같으니 감히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석고대죄하느라 다리가 풀린 상태에서 간신히 일어나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는 화구.
“화인에게 손은 목숨보다 소중합니다. 이 손을 내놓겠습니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들어 장작불 속에 밀어 넣는다. 비명을 지르는 김홍도는 그런 와중에도 손을 빼지 않고 말한다.
“어린 화공의 목숨을 구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아악.”
불길 속에서 절규하는 김홍도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여기서 김홍도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오른손을 불 속에 집어넣는 장면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거세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김홍도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노력과 죽음으로 탄생한 염료가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이런 노력조차도 빛을 볼 수 없었던 상황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화원의 역할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었던 절규는 표면적으로는 신윤복의 목숨을 구명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예술의 죽음을 선언한 행위일 수도 있다.
☞ 13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