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화사 4
<바람의 화원>은 두 예술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이성이라는 점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역사적으로는 두 인물이 같은 시대에 활동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만나게 되었고, 동성이 아닌 이성으로서 이야기를 엮어나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바람의 화원>은 역사와 픽션을 가미한 팩션 장르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어진화사는 4회 차를 배정할 만큼 극에서 중요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화원의 최고 영예는 어진을 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래도 조선조 당대 최고 두 화원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로서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재였을 것이다. 극에서 어진화사는 정순왕후와 갈등 관계, 김홍도와 신윤복이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로서도 의미가 있다.
이번 회차에서는 어진화사를 수행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지난 회차에서 다가올 위기를 암시하는 복선 구실을 했던 것은 - 가장 중요한 용포를 칠하는 - 붉은색 염료 속에 이물질을 집어넣었던 장면이었다. 과연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청자의 우려 섞인 시선은 김홍도가 색상에 이물질이 든 것을 발견함으로 인해 일단락되었다. 이는 시청자에게 위기감을 심어주면서도 문제가 금방 해결되는 상황은 이 드라마에서 꾸준히 드러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안방극장의 드라마이다 보니 작가 또한 밀도 있는 긴장감보다는 다소 이완된 방식의 서사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어진화사 4편에서 중요한 대목은 아무래도 신윤복이 여인으로서 조금씩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어진화사 작업을 하면서 그림자 실루엣 속에 비친 여인의 얼굴선을 김홍도가 포착해 내는 장면은 새로운 방식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너, 정말. 남자가 맞느냐?”
“……”.
“스승님 말씀에 왜 대답이 없어?”
“그야 당연한 것을 물으시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지금 니 그림자가 여인의 모습 같지 않느냐?”
“그림자는 그저 허상일 뿐 아닙니까? 스승님의 그림자는 산도깨비 같습니다”
“그림자는 실체를 반영한다. 그렇지 않으냐?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허나 실체도, 실체를 비추는 그림자도 모두 진실은 아닙니다.”
“그럼 진실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느냐?”
“진실은, 마음속에.”
이번 회차에서는 어진화사 스케치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어진에 채색하는 장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실질적으로 어진이 제작되는 과정이 화가들의 붓을 통해 아낌없이 표현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회차는 볼만한 장면이 많다.
드라마는 소설처럼 복선을 통해 사건을 전개시킨다. 단청소에서 일하는 신영복이 동생인 윤복에게 색을 만들어 주기 위해 무리하는 장면은 그에게 곧 위기가 닥쳐올 것임을 암시한다. 신영복과 신윤복과 관련된 장면이 자주 노출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색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틀거린다든지, 윤복에게 물감을 가져다주고 난 후, 잠시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는 장면들은 복선 구실을 충실히 수행해 낸다.
영복이 윤복을 단순히 동생이 아닌 이성으로 느끼는 장면은 염료 항아리를 건네주는 장면에서 구체화된다. 윤복이 형을 끌어안는 장면에서 영복의 시선은 형제애 이상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김홍도 또한 묘한 감정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포옹을 하고 난 후 떠나가는 윤복을 바라보는 영복의 표정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 두 번째 염료 항아리를 전달해 주러 간 영복. 윤복의 관모를 바로 잡아주면서 차마 윤복을 만지지 못하는 손길에서 고뇌가 느껴진다. 감독은 이런 미세한 감정의 울림을 잘 포착해낸다.
김홍도와 어진화사 작업을 수행하던 신윤복이 피곤함을 떨치려고 잠시 고개를 흔드는 장면은 신영복이 단청소에서 단청에 색칠을 하면서 피곤함을 느끼는 장면과 그대로 오버랩된다. 카메라는 작업대 위에서 일하고 있는 신영복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잡으면서 점차 그가 작업하는 위치까지 시선을 끌어올린다. 순간 단청의 초점이 흐려지는 순간, 영복은 작업대 옆으로 다가온 윤복을 대면한다. 환상 속 장면은 어느 방 안으로 이어지고, 갓을 쓴 영복과 가채를 머리에 얹은 윤복이 마주 앉은 모습에서 영복이 윤복을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고아한 윤복의 자태를 바라보는 영복의 시선은 이전의 동생으로 대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 장면은 윤복을 현실적으로는 동생으로 대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정인으로서 그렸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 대화는 다음 장면에서 구체화된다. 다음은 단청소 노인의 손녀와 영복이 나누는 대화다.
“대체 동생이 너한테 뭔데, 뭔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그 아이는 나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아이가 웃으면 내가 기쁘구. 그 아이가 울면 내가 슬프구. 그러니 내가 행복해지려구. 그래서 그 아일 돕고 싶은 거다.”
마지막 부분에서 영복이 헛것을 보면서, 결국 영복은 동생인 윤복을 쫓아가다 작업대에서 떨어지고 만다. 영복이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고, 그릇이 깨지는 장면은 더 이상 영복이 회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어진화사를 완성했다는 장면을 구상하기 위해 작가는 화룡점정이라는 고사성어를 적극 활용했다. 신윤복이 스승인 김홍도에게 뭔가 이상하다면 붓을 들고 어진의 임금 눈썹에 마지막으로 점을 그려 넣는 장면이 그렇다. 그리고 쓰러지는 신윤복. 어진화사 수행으로 인해 피곤이 쌓여 쓰러진 측면도 있겠으나 신영복의 불행을 직관적으로 감지한 신윤복의 행동으로 전이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듯하다.
이번 회차에서 마지막 장면은 죽음으로 인해 이별하게 되는 신영복과 신윤복의 이별 장면을 꿈이라는 형식으로 아스라이 재연해 낸다.
“너는 오면 안 돼.”
“어디 가는데?”
☞ 12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