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화사3
지난 회차에서 김홍도와 이명기가 실랑이하던 장면이 다시 이어지고, 어느새 화면은 억새밭으로 바뀐다.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선남선녀가 걷는다. 바로 영복과 단청소 원로의 손녀 허옥.
특이한 열매가 달린 식물을 발견하고 이를 알려주는 허옥. 용포를 염색하는 색이라는 말을 들은 영복은 바로 관심을 보인다.
“주사(붉은 색을 내는 염료의 일종)처럼 발색만 잘 된다면 용포를 칠할 때 실제로 쓸 수도 있겠네.”
이 장면은 극의 말미에서 김홍도와 신영복이 도화서 전통을 깨고 어진을 그릴 때 새로운 염료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과 이어진다.
채취한 열매로 색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신영복. 그런 과정들이 시간의 흐름 처리를 통해 자연히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붓으로 염료를 찍어 화선지에 그림을 그려보는 영복. 약간 못 마땅한 표정이다. 이어 김홍도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장면은 음악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갑작스러운 장면에 딱히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자구책이 아닐까, 싶다. 김홍도는 옷 정리를 하다 문득 신윤복과 그림 그리던 당시 상황을 떠올린다. 과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장난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묘한 여운을 남기는 미소를 짓는 김홍도. 김홍도를 흠모하는 친구 여동생인 이정숙의 등장. 김홍도에게 수놓은 손수건을 건네주는 그녀. 이 장면은 직접적인 삼각관계의 구도로는 볼 수 없지만 이미 신윤복을 떠올리고 난 직후의 시점이라 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
이번 회차에서는 감추려는 자와 이를 파헤치려는 자의 대비가 선명하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성정체성을 둘러싼 에피소드, 정조와 신하들 간의 대립, 정조와 정수왕후의 기싸움, 과거의 기억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김홍도 등 이런 대립적인 구도는 긴장감을 고조시켜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짐을 싸는 신윤복. 필기구를 챙기고 잠시 멈칫하더니 서랍에서 뭔가 하얀 천을 꺼낸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으로 보아 여성용으로 쓰일 물품으로 짐작된다. 작은 보따리를 들고 길을 나서는 신윤복. 마당에서 마주친 계부인 신한평. 김홍도와 함께 방을 쓰는 상황이 되었으니 행실을 철저히 하라는 조언을 한다.
형인 영복을 만나러 가는 김홍도. 단청소에서 작업하다 붓을 놓치는 장면. 마치 이어질 사건에 대한 복선을 암시하는 듯하다. 붓을 주워 드는 신윤복.
다시 화면이 바뀌고 윤복과 영복이 정자에서 나누는 대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올리는 영복. 단청소 얘기를 나누다 꽃으로 만든 안료를 전해준다.
별제의 진정성 없는 축하를 받는 김홍도와 신윤복. 그들의 인사 또한 형식치례다. 박을 밟아 깨고, 팥을 뿌리는 의식 또한 액운을 없애려는 형식치례에 불과하다. 그런 형식의 무용성을 화면에서는 희화화된 형식으로 재현해 낸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방을 같이 쓰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곳곳에서 여성임을 숨기기 위해 벌어지는 신윤복의 행동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조성한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상황을 알고 있기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흐름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런 긴장감은 극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태조의 어진을 감상하는 김홍도와 신윤복. 태조의 어진을 보여주며 예조판서가 이를 내레이션 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그의 음성이 현실 속으로 이어지면 김홍도와 신윤복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객관적 상관물로 등장하는 것은 정체불명의 흰 천이다. 흰 천은 신윤복의 여성성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이를 함부로 대하는 김홍도와 이를 못마땅해하는 신윤복의 보이지 않는 대결이 웃음 코드를 자극한다. 이는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남존여비 사상을 상징으로 보여준다. 결국 신윤복이 남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사회상을 반영했던 조처였다. 신윤복이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한계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그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목욕신에서 김홍도의 시선에 노출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신윤복의 처절한 저항은 여성으로서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없는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신윤복이 빨래를 하면서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더럽혀진 천을 방망이로 두드리는 장면은 희화화되지만 그 속에는 당대 남녀 차별에 대한 분노가 숨어있다.
어진화사를 위해 내시와 나인들에 의해 용포를 입고 있는 정조와 내시들에 의해 관복을 입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모습이 이어진다. 이 장면은 정조와 이들이 운명적 동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회차에서는 유난히 드레스 코드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정조의 용포, 신하들의 관복, 화원들의 관복은 각기 다른 디자인과 색상으로 신분과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를 준다. 특히 붉은색 계열과 푸른색 계열의 관복은 신분의 대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어진화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하들은 정조로부터 퇴청을 명 받는다. 애초 신하들과의 적대관계였던 정조는 그들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꾸미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쫓겨난 신하들이 그런 정조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급기야 김홍도와 신윤복의 자질 논란으로까지 이어진다. <바람의 화원>에서 정조와 정순왕후 측의 팽팽한 대립 구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극을 전개시키는 방편으로 활용된다.
예조판서 역을 맡은 배우의 내레이션 내용과 다른 정조의 태도는 대비된다. 이를테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할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드러내지 말아야 할 손을 드러내며 정중앙을 향해야 하는 자세는 옆으로 비스듬하다. 마치 어진에 대한 기존 전통을 깨려는 듯 정조의 태도는 파격 그 자체로 비쳐진다.
다시 분청소에서 열심을 색을 만들고 있는 영복. 그의 자세는 사뭇 진지하지만 스승 노인의 말로 짐작컨대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여 건강을 위해를 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노동이 결국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역설은 톨스토이가 예술론에서 지적한 대로 예술을 위해 희생당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측면에서 신영복은 예술을 위해 희생되는 노동자의 전형으로 볼 수도 있다.
음모를 꾸미는 별제 측 수하. 색이 담긴 항아리 속에 뭔가를 넣는다. 이는 훗날 새로운 사건을 잉태하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이어지는 정순왕후와 정조의 대화 속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사적지위와 공적지위가 부딪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번 회차에서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은 아무래도 어진화사를 수행하는 과정을 순서별로 보여주는 고증에 입각한 장면 구성이다. 어진을 그리는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화원으로서 최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재연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자리한다. 정조를 보며 어진을 그리되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그림이 화면에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단순히 정조가 사도세자를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인지, 정조를 모델로 사도세자를 그리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극의 흐름으로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크긴 하다. 이는 다음 장면에서 등장하는 회상 장면, 즉 영조와의 대화에서 실마리를 풀 수도 있다.
어진을 그리는 중에 정조는 김홍도에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고 언급하며, 과거 영조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
언젠가 때가 되면 두 화공들이 그린 그림을 찾아 아비를 살려내거라.
그림이라니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할바마마
두 화공들에게 그리려 했으나 받지 못한 그림.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 아버지, 사도세자의 초상이다.
정조가 말한다.
“밝혀야 하는 비밀.”
죽음을 맞은 서징을 회고하는 김홍도. 과거의 기억들이 재생되고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신윤복의 부모, 이를 기억하는 신윤복. 아버지의 초상을 재현하려는 정조, 스승과 친구의 죽음을 기억하는 김홍도. 마지막 엔딩신에서는 세 인물을 담은 화면이 나란히 보이며 운명의 동질성을 상징적으로 구현해 낸다.
☞ 11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