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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9회)

어진화사 2

by 정작가


이번 회차에서는 김홍도와 이명기 대결이 주를 이룬다. 어진화사를 뽑기 위한 경연에서 그림 대결을 펼치는 이들 간의 긴장감과 갈등, 이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극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극의 처음은 화원들이 도화서 시험장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회루가 보이는 풍경에서 돌다리 위를 지나가는 화원들의 행렬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마치 행진곡을 연상하듯 경쾌한 음악은 경연에 임하는 화원들의 진군을 알리는 듯하다. 안경을 고쳐 쓰는 김홍도의 행동은 자못 진지하다. 이번 회차에서 안경은 객관적 상관물로서 극의 흐름을 지배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물건으로 자리한다. 작가가 극 도입부에 이런 장면을 배치한 것은 복선으로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종종 영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을 제삼자의 입을 빌어 표현해야 될 때가 있다. 시험장 가는 길의 별제의 음성이 영상과 오버랩된 것이 그렇고, 김홍도와 신윤복의 대화에서는 경합에 참석하는 화원들의 신원을 은연중 드러나는 장면이 그렇다. 이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작가의 배려로 볼 수 있다. 극에서는 앞뒤 장면이 모두 순차적으로만 이어진 것은 아니라 맥락을 제대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배경지식을 설명해 주면, 맥락을 파악하기가 쉽다. 그런 차원에서 사극을 감안하여 다소 생경한 어휘가 나올 때는 자막으로 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드라마라는 장르의 속성은 영상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기에 이런 기술적 현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경연장을 향해 가면서 걱정하는 신윤복의 표정을 보고 그를 위로하는 김홍도.


“화원은 빈 종이, 그것만 정복하면 된다.”


어진화사 경합이 알려지고, 누가 우승을 할까 다들 판돈을 거는데 도화서 화공들, 주변 백성들, 김조년과 함께한 권문세가들 순으로 화면은 이어진다. 다소 작위적인 느낌도 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정향의 눈빛을 보면, 김조년과의 관계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모양새다. 연주가가 주인공이 되는 당대의 현실과는 달리 이 시대의 예술은 한낱 세도가들의 흥을 돋우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번 회차에서 김홍도와 이명기의 설전은 몇 번이고 이어진다. 경연장 안과 밖, 길거리에서도 이들의 대결은 그치지 않는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조와 정순왕후의 대결로 그려볼 수 있다.


"저런 놈이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다니. 가끔 하늘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그려야겠다."


김홍도가 이명기와 설전을 벌이고 가자 신윤복에게 하는 말이다.

정유년 어진화사 경합을 예고하는 북이 울리고, 화원들을 따라 이어지는 카메라의 이동으로 대회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화제는 용파(몽타주)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어진 문장을 해석하여 임의의 인물을 화포에 담는 방식이다. 경연 대표 관리가 언급했던 것처럼 ‘말로써 사람을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런 다소 독특한 경연 방식을 알리기 위해 작가는 장면을 추가했다. 화공이 급히 달려와 동료들에게 이를 전하는 대목에서 경연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기 한 화공이 정자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샷은 급작스러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급한 카메라의 앵글이 급하게 줌 아웃된다. 이는 연기자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한 이유 때문이다.


김홍도와 이명기는 한참 대화를 하는데 이는 현장의 상황과는 시간 개념이 맞지 않다. 안경을 밟아버린 이명기. 본격적으로 경연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는 화원들의 모습. 목탄의 필선이 종이 위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웅장한 음악이 창조성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안경 없이 그림의 감을 잡지 못하는 김홍도. 얼굴 묘사를 신윤복에 맡긴다. 신뢰감의 표현이 엿보인다.


"눈을 감아라. 어서. 자 지금부터 머릿속에 있는 잔영들을 모두 지워버려라. 이제 새롭게 화제를 떠올리거라."


눈을 감고 화제를 음미하는 신윤복의 얼굴 위로 다시 음악이 흐른다. 가사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를 암시하며 김홍도와 신윤복이 실제 화제의 주인공을 대면하는 듯한 영상을 재현해 낸다. 눈을 뜬 김홍도와 신윤복. 일필휘지로 얼굴 초상을 그려내는 신윤복, 전체적인 윤곽을 그리는 김홍도. 음악이 흐르는 동안 화원들의 진지한 표정과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순간이 영상으로 이어진다. 세필붓으로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

"두 눈이 천하를 갈라보는구나라고 했는데".


김홍도는 신윤복의 마음을 읽는다. 결국 눈 부분의 수정을 허락하고 마침 경연을 마치는 북소리를 듣게된다.


이후 장면에서는 김조년과 이명기, 정순왕후와 대신들, 정조와 홍국영의 대화가 이어진다. 연이은 이 장면들은 김홍도와 이명기의 대결이 한쪽으로 기울었음을 보여준다.


신윤복과 신영복의 대화. 한 톤 다운된 색조톤의 이 연상 장면은 과거의 기억이다. 신윤복이 어진화사가 단순한 참여의 장이 아닌 필승의 장이어야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드디어 완성된 그림을 펼치고 감동을 시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동은 그림을 평가하는 과정을 말하는 옛말이다. 여기서는 다들 자기 조의 그림에 대해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보여준다. 이와는 달리, 다소 경직된 김홍도와 신윤복의 표정은 대조를 이룬다. 한결 같이 대신들은 이명기의 그림을 칭송하지만 사시가 된 초상화를 그린 단원과 해원의 그림에 대한 박한 평을 내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신윤복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때 경쾌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며 번암 체제공의 모습이 보인다. 번암 체제공은 정조의 스승으로서 이번 경연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 인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경연 그림에 대한 평가가 이명기 쪽으로 기울었지만 이후 상황은 반전된다. 화제에 묘사된 실제 인물의 등장은 객관적인 평가를 가능케 만드는 역할을 한다. 몽타주 속에만 존재했던 인물이 실체 하게 된 것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탁월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결론적으로, 사시가 되어 있는 번암 체제공의 모습은 김홍도와 신윤복 조가 그린 인물을 닮게 된 것이다.


“여기 두 화원은 그 누구에게도 없는 마음의 눈을 가진 자들이오.”


김홍도와 신윤복은 결국 어진화사를 수행할 낙점자로 결정된다. 분노하는 이명기는 주관화사와 동참화사에 대한 역할에 대해 의의를 제의한다. 맞받아치는 김홍도.


결국 경합을 끝내는 번암 체제공의 한마디.

“자네 이제 보니, 그림 실력이 아깝군 그래.”

이로서 이명기는 김홍도에 대적할 대항마에서 더 이상 그 가치를 상실한 인물로 추락하게 된다.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하고 있는 김조년은 그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10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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