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2

현각 / 열림원

by 정작가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②>는 1편에 이어 현각 스님이 하버드를 거쳐 화계사로 안착하기까지 과정을 담은 책이다. 여기서는 하버드 대학원에 다시 복학한 이후부터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에 머물기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만행(萬行)의 사전적 정의는 '불교도들이나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를 저자의 시점에서 재정의한 부분이 있는데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며 만행이다.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모든 것 - 이것이 바로 만행이다.'


이런 정의를 접하다 보면 누구라도 만행을 하며 살아간다고도 할 수 있겠다. 언제부턴가 인생을 수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미 만행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행자의 삶'이라고 하면 낯설지만 스님들처럼 수행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도 삶에 대한 색다른 접근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출가를 앞둔 저자의 심경에서부터 출가에 이르기까지 주변인들에 대한 애틋한 사연이 녹아있다. 출가를 위해 결별을 한 여자 친구, 타국에서 편지로 부모님에게 출가한 사실을 밝히는 과정들을 보면 고독한 시간 속에서 방황했던 한 젊은이의 고뇌와 방황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스님의 행로를 보면서 수행자라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수많은 나라 중에 현각 스님은 어째서 한국을 택했을까 하는 의문은 이 책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린다. 스님이 밝혔던 것처럼 처음 밟아보는 땅이었지만 주변 풍경들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는 것은 전생의 인연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여하튼 한국의 여러 문화들이 친숙하게 다가왔던 일화는 이런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실제로 전생이 있는지 없는지는 신의 존재의 여부를 믿는 것처럼 개개인의 선택과 믿음의 영역이지만 말이다.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②>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대목은 '과학적이기 때문에'라는 장이다. 위대한 과학자인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불교 교리에 언급한 적이 있다는 내용인데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되는 대목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 종교가 돼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세계를 부정해 왔다.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해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종교는 자연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똑같이 존중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둬야 한다. 자연세계와 영적인 부분의 통합이야말로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야말로 이러한 내 생각과 부합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현대의 과학적 요구에 상응하는 종교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


과학적 요구에 상응하는 종교로서의 불교의 가치를 설파한 아인슈타인의 견해는 다른 종교를 믿는 종교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가 자연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공감한다.


책을 읽다 보면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을 언급한 내용도 있고, 수행하는 스님으로서 일상들을 엿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종교 서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불교에 출가하기까지의 한 인간의 고뇌와 방황을 담다 보니 불교적인 색채가 농후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도 읽기에는 큰 부담이 없는 책이다. 저자가 가톨릭 집안 출신이면서도 개종하여 불교로 출가하게 된 것을 두고 종교 간의 보이지 않는 간극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저버리고 불교에 귀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로 종교라는 것은 편협한 것이 아니라는,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열린 세계라는 것에 오히려 방점을 찍고 싶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기독교 계통의 종교시설에서 방역 의무를 위반하여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겉으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진정한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단순히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신앙인은 아닐 것이다. 그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진정한 종교인이자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불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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