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by 정작가


톨스토이의 예술론에 대한 연구가 자기 회고를 통해서도 사회적으로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보면, 그의 이런 주장이 마치 우이독경(牛耳讀經)처럼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런 예술론에 대해 자기주장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확고한 신념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술은 사람이 어떤 감정을 체험하여 이를 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작업임에 분명하다.


이런 톨스토이의 예술관은, 그가 말하는 진짜 예술 작품의 양과 소위 모조품의 양의 비율이 1대 10만, 혹은 그 이상의 거리가 있다고 말하는 상황에서는, 그 인식의 폭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한 의지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예술 장르가 장편 소설, 단편 소설, 비극, 희극, 회화, 조각, 심포니, 오페라, 오페레타, 발레 등과 같이 익히 알려진 것 중에서도 그러한 것이라면 사실상 톨스토이에게 있어서 진정한 예술이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소위 현재 상황에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대부분의 창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이런 인식의 근거에는 예술을 특정인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당대의 가치관과 관념적인 해석에 기초한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톨스토이가 살았던 시절에 예술의 대중화가 아직은 시기상조였던 시대적 한계 상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 한 편, 역설적으로 소수 특권층의 예술을 경시하고, 도리어 민중 예술에 비중을 두고 예술론을 펼쳐가는 톨스토이의 견해에 비춰보면, 외형적인 측면에서 흔히들 예술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내적인 가치가 중점을 이루는 작품을 진정한 예술로서 평가하는 진일보한 톨스토이의 예술관과 대면하는 것도 사실이다. 톨스토이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로서 진품을 가려내기가 어려운 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현대에 있어서 예술 작품을 가려내기가 한층 더 어려워진 것은, 가짜 작품의 외형적인 가치가 진짜 작품만 못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예술품의 진위논쟁은 참된 예술의 가치가 비슷한 가치를 모사하는 것이 아닌 예술가의 체험을 토대로 한 감정의 전파가 진정한 예술성의 근원임을 인식케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에 언급한 대목이다.

그러나 교양이나 실생활에 의하여 손상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엔 그렇게는 안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술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시들었기 때문에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에도 의논이나 연구에 좌우되지 않고는 못 견디며, 또 그 의논이나 연구는 결국 그들을 혼란시켜 버린다.


이 대목을 보면, 요즘 평생교육원에서 배우고 있는 다양한 예술 과정들이 진정한 예술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그런 가치들을 훼손하고 있다고 규정해도 상관없다고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고로 톨스토이의 예술론이 소수 특정 계층에서 인식되어 온 모조 예술론의 범위가 대중에게로 확장되어가는 측면에서 보면, 이를 수용하는 측면 또한 진정한 예술론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다소 혼란스러운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본질적인 예술의 의미가 당대의 예술적 가치과 현재의 예술의 의미가 부합되지 않는데서 오는 괴리감으로 인해 더욱더 그 이해의 폭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 장에서 톨스토이가 언급한 베토벤의 음악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예로 드는 내용을 상기해 보면, 진정한 예술이라는 것은 누군가 예술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를 향유하는 관객이나 독자의 차원에서 가감 없이 예술적인 지향점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할 때 그 가치가 발하는 것이니, 막연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작품을 두고 예술 작품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그릇된 것임을 일깨워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가 소설 장르에서 졸라, 부르제, 위스망스, 키플링 등의 작품을 언급하며 별 의미 없는 묘사 부분을 언급한 것도, 그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작업을 진정한 예술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라고 폄하하고 있는 것도, 그 자체로서 예술적인 향취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솔직한 느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는 예술가들의 형이상학적인 개념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견했던 거장의 예술에 대한 질책성 발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은 그저 예술을 위한 예술일 뿐,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범주에 들어서지 못한다는 단호한 모조 예술에 대한 배격 선언일지도 모르겠다.

이 장의 말미에는 톨스토이가 진정한 예술이라고 평가하는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지극히 단순한 마음, 보통 사람도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당연한 마음, 남의 감정에 감염하는 마음, 그러니까 남의 기쁨을 기뻐하고 남의 슬픔을 슬퍼하여, 사람과 사람을 서로 결합시키는 마음


톨스토이는 이런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이 진정한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관중도 비평가도 없었던 시절에 만든 순수한 작품이 진정한 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예술론은 어쩌면 단순해 보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 혹은 관점이나 해석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인간의 마음을 천편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주장대로라면 설사 모조 예술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의 동화를 일으키면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일 텐데, 그런 예술 판정을 추동하는 기준을 과연 어떻게 정할 수 있을 것인지도 문제가 될 소지는 있기에 더욱 생각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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