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의 처음은 톨스토이가 속했던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참된 예술을 알아보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예술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을 예술로 착각한다고 하는 등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며 시작한다. 이 장에서는 특히 바그너의 작품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톨스토이와 같은 거장조차도 예술론에서 특정 예술인에게 큰 비중을 두는 것은 당대 그 위치가 대략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하다. 톨스토이가 관심을 갖는 예술 분야는 연극과 음악이다. 지금은 연극에서 음악적인 요소를 찾아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당대에는 각기 다른 영역이 합쳐지는 것을 경계하는 시선도 보인다.
그러나 어느 예술에도 제각기 일정한, 다른 예술과는 합류하지 않고 오직 접촉할 따름인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 따라서 숱한 예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연극과 음악이라는 이 두 예술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를 하나의 완전한 표현으로 통일하려고 들면 한쪽 예술의 요구가 다른 쪽 예술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런 시선을 견지하면서 톨스토이는 예술 간 융합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한쪽이 예술이 아닌 모조품’ 일 때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등 비판적인 관점에서 머물러있다. 또한 시와 음악의 합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여전히 드러낸다. 그런 톨스토이에게 유난히 바그너의 음악과 시에 대한 합치의 의미는 비교적 관대함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그의 시작(詩作)인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노작(勞作)에 대해서는 반드시 현대인이라면 이 작품을 이해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고 극찬하기도 한다. 그것에서 더 나아가 톨스토이 자신이 만든 발췌를 통독하도록 권하기까지 한다. 다만 마지막 설명 부분에 ‘이 작품이야말로 조잡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조(模造)된 시의 표본’이라고 언급한 대목에 대해서는 저자의 의도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톨스토이는 또 ‘바그너의 작품은 무대에서 보지 않고서는 논하지 말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모스크바에서 상연되고 있는 작품을 직접 찾아가 감상한 과정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의 설명에는 관객들의 부류와 인원에 대한 언급도 있고, 무대에 대한 묘사, 배우의 연기 과정,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음향에 대한 평(評), 곡에 대한 소개, 막 단위로 이루어지는 내용에 대한 해석 또한 세밀하게 포진되어 있다. 이런 세세한 방식의 묘사를 보면, 작품에 대한 예찬 수준인데도 여전히 이런 감상 행위를 비판하는 태도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극장 문이 미어지게 몰려드는 관중, 상류 계급의 교양 있는 사람들은, 무의미한 연출이 계속되는 여섯 시간 내내 꼬박 앉아 있다가, 이 어리석은 구경을 한 대가로, 자신을 진보적인 문화인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권리를 얻은 듯이 망상하면서 돌아간다.
글을 읽다 보면, 톨스토이가 당시 바그너의 작품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를 직접 감상하고 그렇게 된 원인을 분석하면서 비로소 이 작품에 대한 예찬보다도 비판적인 견지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이 작품을 본보기로 끌어낸 것은, 내가 아는 한 예술 모조품들 중에서도 이만큼의 솜씨와 열의로 예술 모조의 갖은 수단 – 표절 · 모방 · 속임수 · 흥미 –을 한데 뭉쳐 놓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후로 이어지는 비판의 강도는 갈수록 세진다. 톨스토이는 바그너의 작품에서 시적 차용, 모방, 속임수, 흥미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도구와 의상, 음악의 활용 방식, 관객들의 관찰 과정을 기술하면서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관점으로 마무리한다.
이리하여 예술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무의미하고 조잡하고 속임수로 된 이 작품은, 예술 모조의 뛰어난 솜씨 하나 덕택으로 지금 전 세계를 횡행 활보하고, 상연될 적마다 수백만의 돈을 쌓아 올리게 하며, 더욱이 상류 계급의 취미와 예술을 더욱더 타락시키고 있다.
톨스토이의 관점에서라면 지금 현대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다수의 예술행위는 모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악성(樂聖)이라고 추앙할 수 있는 바그너의 예술 작품을 모조라고 취급할 지경이면 사실상 현대 예술에서 참 예술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관점 또한 시대에 따라 변천의 과정을 거친다. 톨스토이 시대에 다소 생소하고 도전 의식을 가진 예술이 모조 취급을 받았을지라도 현대에 들어서는 한 가지 분야의 예술보다는 예술 간의 융합과 통섭의 가치를 추구하는 작품들이 인정받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예술의 진위 논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위치를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장의 말미에 편집자가 제공한 <니벨룽겐의 반지>에 관한 개괄적인 내용을 읽어보고 과연 톨스토이가 주창한 대로 이 작품이 예술 모조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