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 톨스토이는 단도직입적으로 진짜 예술과 가짜 예술을 구별하기 위한 특징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이전 장에서 수차례 말했던 예술의 감염성(感染性)이다. 다른 말로 작자와 관객, 작자와 독자, 작자와 청중이 공감하지 않는 예술은 가짜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술의 중요한 매력과 본질은 바로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의 감정으로 결합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감염력의 척도를 예술을 재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말하는 톨스토이는 이런 감염력을 갖게 되는 대소의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요건을 제시한다.
첫째 전해지는 감정이 독창적이냐 어떠냐에 따라서,
둘째 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확실하냐 어떠냐에 따라서,
셋째 예술가의 성실성, 그러니까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예술가 자신이 체험하는 힘이 크냐 작으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톨스토이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조건을 개성, 명확성, 성실성으로 압축해서 표현한다. 이러한 조건 중 하나만 빠져도 톨스토이는, 그것은 예술이 아닌 위조품이라고 말한다.
톨스토이가 저자와 대비되는 세 부류를 관객, 독자, 청중으로 표현한 것은 사실상 예술과 관련된 모든 장르를 총망라해서 예술을 수용하는 부류를 지칭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뮤지컬이나 연극은 관객, 독서에서는 독자, 음악 연주회 등의 감상은 청중으로 표현한 듯하다. 이런 세밀한 분류에서 모두 저자와 혼연일체가 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지 못한 경우라면 그것이 비록 겉으로는 화려한 예술의 형식이라고 할지라도 톨스토이의 입장에서는 위조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톨스토이의 확고한 신념은 당시 유행했던 예술에서 형식적인 것에만 치중하고 정작 수용자와 공감 내지는 동질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형식적으로만 예술을 지향하는 행위를 질타하는 듯하다. 물론 이런 그의 기준은 절대적인 진리 지표가 될 순 없다. 오로지 톨스토이의 예술론이라는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런 측면이라면 현재의 기준으로 봐도 이런 관점이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당대처럼 요즘은 예술의 기준이 그토록 첨예하게 여겨지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예술가의 작품에 호불호는 할 수 있어도 그것은 진정한 예술이니 위조품이니 하는 판단은 사실상 불가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거장이었던 톨스토이가 표명했던 예술론이 비록 현재의 기준으로는 맞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던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저 막연하게만 여겨졌던 예술의 진위를 속 시원하게 가려주었던 톨스토이의 업적은 현대 시점에서도 유효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가 과연 몇 가지 제시된 요건을 충족시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지, 아니면 설사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수용자의 공감성만 충족하면 되는 것인지 등 설왕설래할 여지를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톨스토이의 견해를 다소 촌스러운 느낌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당대의 거장이라는 의미도 클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가 예술의 진위논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현실적 맥락과 시대 상황이 예술에 대한 판단을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충족시켜야만 했던 이유 때문은 아닐까. 현대의 예술관이 틀에 박히지 않고, 수용자의 해석학적 관점 위주로 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톨스토이와 같은 거장의 예술론이 당대 평가의 씨앗이 된 것에서도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