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 톨스토이는 인류를 진보시키는 기관(器官) 중 하나인 예술의 고장에 대해 말하며, 당시 상류 계급 사회에서 당연히 수행해야 할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고 성토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대 사회에서는 예술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기술한다. 인류에 의해 이루어진 예술의 성과조차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해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비판은 우리가 익히 명성을 들어 알고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톨스토이가 직접 비판의 메스를 가한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시: 보들레르, 베를렌, 모레아스, 입센, 메테를링크
회화: 모네, 마네, 샤반, 번-존스, 슈터크, 뵈클린
음악: 바그너, 리스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특히 톨스토이가 현대 예술이 대부분 가짜 예술과 공허한 예술의 범람 등으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예술이 도리어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데 일조한다는 주장을 들어보면, 여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술에 대한 관념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장에서 톨스토이는 소위 퇴폐한 예술의 결과에 대한 폐해를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그중 첫 번째로 한 명의 예술가를 탄생시키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예술 교육에 매몰되는 것 또한 그런 폐해 중 하나로 손꼽는 것을 보면, 톨스토이에게 있어 소위 예술적 인재의 양성 과정은 ‘부유층의 노리개 역할’을 하는 비정상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톨스토이의 이런 인식은 당대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이 소위 부유한 상류층에 한정되었고, 지금처럼 예술을 하는 부류들이 그들의 쾌락을 위해 복무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위치에 근거를 두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해석된다. 소수 계층을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예술 분야에 복무하고 있었던 현실은 이미 지난 장에서도 소상히 다루었던 문제였지만, 현재 예술가들이 대우받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 시절과의 단순 비교는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로 톨스토이가 예술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점은 예술이 산업으로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과연 그것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이다. 톨스토이의 예술의 범위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대거 이쪽으로 몰려들면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영위하던 사람들의 일상이 다소 왜곡되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세 번째로 톨스토이가 비판하는 것은 예술이 민중의 사상적 혼란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과거 석가모니나 그리스도와 같은 성인들을 숭상하고 따르던 민중들이 예술가들을 그와 비슷한 반열에 올려놓고, 실제로 그런 예술가들이 한 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음으로써 기존의 가치관을 혼란케 하는 주범으로서 예술가들 지목한다는 사실이다.
네 번째는 기존의 도덕률이 예술가들이나 그들이 만든 작품으로 인해 퇴색되고, 오히려 기존에 가졌던 기준들이 예술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대목이다. 이는 단적으로 미의 위상이 쾌락의 위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예술이 미신과 거짓 애국심, 음탕이라고 하는 가장 해로운 감정을 감염시킴으로써 사람들을 타락시킨다고 보는 견해다. 톨스토이가 예술 가운데 교회적인 미신으로 지적하는 것은 기도문, 찬송가, 회화, 우상이나 입상, 오르간, 음악, 건축 또는 종교의식 등이다. 애국적 미신으로는 시, 소설, 음악, 노래, 개선의 행렬, 국왕이 참석하는 집회, 전쟁의 그림, 기념비 등으로 거론한다.
톨스토이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거론하고 있는 것은 성적 방종에 대한 것이다. 이런 성적 방종을 위해 예술이 복무하고 있다는 것은 대표적인 부정적 요소로써 예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톨스토이의 이런 견해는 그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신앙적 기반을 두었던 생활 속에서 생겨난 사상이기에 현대적 관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지적한 대로 예술의 폐해도 인정할 부분이 있지만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하기에 그의 주장을 비판 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살았던 시대의 관점에서 이미 예술의 폐해를 지적했고, 그런 지적이 부분적으로는 현대 예술 분야에서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예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피다 보면, 그 원류를 통해 현재의 예술을 진단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앞으로 예술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 그 지점을 해석할 수 있는 시야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에 들어서는 오히려 예술가들이 톨스토이가 살았던 당시 소수 계층을 뛰어넘는 부류들이 많고, 그 위치가 새로운 보이지 않은 계급 사회를 형성하는 단초라고 할 수 있을 때, 예술을 이끄는 계층과 이를 향유하는 계층의 간극은 메워지기 힘들다는 유추도 가능해지기는 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대가 어떻게 바뀌든 예술의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기는 갈수록 어렵다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는 예술의 본원적 의미 대신 그 가치를 자본으로 환원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인류의 보편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탄생한 예술이 결국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톨스토이의 주장이 시대에 뒤떨어진 허무맹랑한 것으로 폄하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미 그 시대에서 예술의 모순과 폐해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거장의 시선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 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는 예술의 폐해에 대한 진술이 결코 허투루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