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by 정작가


톨스토이가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논하면서 종교적 자각을 기준점으로 삼은 것은 그가 실제로 예술의 가치를 그런 척도에 의해 평가하기 때문이다.


예술에 의해서 전해지는 감정은 언제나 이 종교적 자각에 의해서 평가되어 왔다.


오죽하면, 이런 종교적 자각에 거슬리는 예술은 ‘멸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거기에 덧붙여 그 밖의 예술에 대해서는 평가조차 내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톨스토이가 이런 과정에서 소위 가짜 예술을 종교적 예술이라고 취급하여 존중하고 장려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부분을 보면, 그에게 있어 종교적 자각을 기준점으로 삼은 예술에 대한 기준은 더욱 섬세한 기준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커다란 불행은 신을 모르는 일이 아니라 신이 아닌 것을 신의 위치에 놓는 일이다.


이 말은 톨스토이가 인용한 어느 교부(敎父)의 말인데, 다수의 사람들이 진정한 종교적 자각 속에서 탄생한 예술과 그럴싸하게 종교적 색채를 입은 예술을 혼동해서 그 가치에 경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 일터이다. 이런 톨스토이의 종교적 예술관은 그것이 어떤 도그마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 가치가 변질된 권력화된 종교의 모습을 추종한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그가 말하고 있는 종교적 자각이 지금처럼 세속화되고 물신화된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가 당시 기득권 세력과 대결하여 진정으로 가난하고 소외받았던 이들이 주인이 되기를 갈망했던 교리를 설파했던, 진정한 그리스도적인 가치를 중점에 둔 것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고 보면 된다. 톨스토이의 종교적 자각을 기준으로 한 예술관은 이렇듯 종교가 진정한 가치를 담고 있었던 시절의 관점이라 현대의 시점에서 보면, 다소 헷갈리는 부분이 존재하기도 한다.


톨스토이는 종교적 자각을 담보로 한 기독교 예술이 실제로는 두 종류밖에 없다고 설파한다.


첫째, 신과 이웃에 대한 세상 사람의 종교적 자각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전하는 예술 즉, 협의 종교 예술이 그것이며, 둘째, 극히 단순한 일상적인 감정이면서 전 세계 만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감정을 전하는 예술 즉 보편적 예술이 그것이다.


톨스토이는 첫 번째 종교적 예술이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다루는 적극적인 감정의 발로라고 말하고, 두 번째 보편적 예술은 ‘ 사랑의 침해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전한다고 기술한다. 종교적 예술은 문학이나 회화나 조각에서 보편적 예술은 이를 포함한 무용, 건축, 특히 음악에 의해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문학, 회화, 조각, 음악 부문 등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작품을 언급하기도 하고, 내용 속으로 들어가 실례를 들어가면서 그에 대한 예술관을 펼치기도 한다.


이 장에서 말하고 있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기준은 종교적 자각에 의해서 기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종래의 주장대로 톨스토이에게 있어 예술은 타인에 대한 감정의 이입으로서 그 가치를 발할 뿐이다.


예술은 과거나 현재나, 어떤 사람이 느낀 감정을 다른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에게 감염시키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톨스토이가 이 장에서 수많은 예술 작품을 거론하며 날 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 대해, 위대한 예술로 간주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서두를 시작 하면서 그에 대한 예술론을 펼친다. 그의 관점에서 위대한 예술은 높은 종교적 감정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척도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라면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은 그런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교향곡 마지막 부분에 실린 실러의 시가 그런 기준을 일부 충족하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기술한 점이 유일한 호평일 정도로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작품을 위대한 예술 작품의 범주에서 제외시킨다. 이런 기준은 소위 ‘현대 사회의 상류 계급 사이에서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모든 예술 작품의 대다수도 이와 마찬가지로 평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톨스토이의 결연한 태도에서 예술을 평가하는 그의 냉철한 기준을 읽을 수 있다.


톨스토이에게 있어서 좋은 예술이라는 평가는 단순히 감명성(感銘性)에 머물지 않는다. 감명성에 이은 일반성의 평가는 배타적인 예술이냐 기독교적인 예술이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다시 나뉜다. 여기서 기독교적인 예술로 평가되었다면, 다시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냐 만인을 결합시키기 위한 단순한 것이냐 하는 입장에서 종교적인 예술인가, 아니면 세속 보편적 예술인가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이렇듯 톨스토이의 주장은 현대 예술론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소 고루하고 편협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더 그의 주장을 세심하게 관찰하다 보면, 그가 말하는 종교적 자각 관점에서 바라본 예술이 과거 소위 기득권 계급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변질된 예술의 범주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예술론을 설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 또한 처음에는 톨스토이의 예술론이 맹목적으로 종교를 추앙하고 맹신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 섞인 시선을 바라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리스도가 내세웠던 진정한 인류에 대한 사랑의 관점에서 인간에게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예술이 진정으로 예술적 가치가 있음을 설파한 그의 예술론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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