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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Jun 19. 2024

순결한 정신 이상자들 (상)

김민수는 동네에 있는 유일한 또래였다. 친구라고 부를 관계는 아니었다. 유일하게 나와 이야기해주는 사람이었기에, 학교를 마치면 나는 집에서 곧잘 그 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가족들은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면서, "너. 걔를 좋아하는구나?" 말했다. "전혀.", 라고 답하자. 그들은 반박했다. "그도 그럴게, 너. 그 애 이야기밖에 안 하잖아."

나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그 애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해봤자 소용 없을 테다. 나처럼 지저분하고, 유치원에서부터 더러운 애라고 찍히고 너희는 이 애랑 놀지말아라, 더러움이 옮아. 라는 말을 듣던 아이에게 선뜻 다가오는 이도 없었고, 내가 다가가 친구를 하자고 하면 발작하듯 울고 소리지르면서 "내가 왜 너랑 친구야!"라면서 시뻘건 얼굴로 말하는 애들이 많았다. 특별히 더럽거나 특별히 음침하거나 특별히 뚱뚱하거나 특별히 못생기거나 특별히 뭔가가 꼬인 건 아니었다. 다만 인식이 문제였다. "저 애는 유치원에서 왕따였어. 몸에서 벌레가 나왔데."라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아이들은 나와 친구가 되거나 나와 몸이 닿으면 즉시 그 무시무시한 다리가 많고 더러운 벌레가 기어나와서 자신에게 옮을 거라고 굳건히 믿는 것 같았다. 

벌레는 없었다. 다만 엄마와의 짧은 통화 이후로 기분이 나빠보이던 유치원 선생이 내 머리를 쥐어 뜯을 듯 만지다가, 이것 봐, 벌레야. 벌레잖아! 라면서 내 머리에 유리테이프를 여러번 찍찍 붙였다 떼면서, 나를 손바닥으로 때리듯이 여러번 아프게 눌러댔고, 자, 봐! 여기 벌레잖아! 라면서 보여준 유리 테이프에는 내 머리카락이 있었다는 게 기억난다. 거기에 내가 보지 못한 아주 작은 벌레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내가 반박한다고 한들 들어주지 않을 게 뻔했다. 선생은 아이들을 불러모으고는 "너희, 연우와 놀지 마. 저 애 머리에서 주먹만한 벌레가 나왔어. 봐봐. 이렇게나 큰 벌레야."라면서 아이들에게 내 머리에서 얼마나 흉측하고 괴물같은 벌레가 나왔는지 열심히 묘사하였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엄마가 내 머리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선생은 엄마에게 통화를 해서는 애 머리에서 벌레가 나왔다며 신이 난 듯이 크게 떠들어댔었고, 이렇게 되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피해가 간다고 주의해 달라고 했던 것이다.

엄마는 그날부터 저녁이면, 화장실에 불을 키고는 그 불빛이 은은하게 거실로 세어나오게 문을 살짝 연 다음, 그 불빛에 내 머리를 비추어보면서 벌레를 찾아다녔다. 엄마의 지친 손이 한올한올 내 머리를 넘기면서 벌레를 찾느라 몇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엄마의 무릎이 좋았고, 엄마의 다정한 손도, 그 은은한 주황빛 불빛도 좋았지만. 어쩐지 엄마가 너무 낡고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 보면 그건, 우리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유치원 선생은, 아이를 넷이나 보냈으니 학원비를 깍아달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분노해서 내게 화풀이 한 것이니까. 내가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면 돈을 더 줄 것이라 생각해서 그랬을 테니까. 그 일에 대해서는 나도 언니에게 전해들어서 진상을 잘 모르겠다. 정말로 학원비를 깍은 것인지, 아니면 추가로 돈을 더 챙겨달라는 말을 거절했던 것인지. 뭔지. 다만 나는 우리 가족의 일이니까 조금 더 억울하게 기억하고 싶은 것 뿐이다. 차라리 그렇게 못살게 굴 것이라면 아예 아이를 받지 말지. 그런데 돈을 챙기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받되 그 애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또래들로부터 고립시키던 그 어른의 마음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소문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이어졌다. 선생님이 머릿니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우리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다고 말할 때, 나와 같은 유치원 출신의 어떤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아니라고 외쳤다. "하연우 머리에서는 주먹만한 이가 나왔어요!"라며 나를 가리킬 때, 아이들이 전부 나를 봤다. 그리고 선생님은 머릿니는 그렇게 클 수 없다고, 어떤 벌레도 그렇게 클 수 없다고 말했다. 매미도 그만큼 크지 않아. 그건 불가능해. 착각한 거겠지. 라는 말을 하셨고, 벌떡 일어나 나를 지목했던 아니는 아니라면서, 억울해하면서 말했다. 분명히 나왔다고 했단 말이에요. 

아이들이 나를 보면서 진짜야? 라고 물었지만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히 그 때 그 유리테이프에 덕지덕지 붙은 건, 내 머리카락 몇개뿐이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그 테이프를 코앞에, 눈앞에 들이밀면서 봐, 똑바로 봐! 여기에 네 머리에서 나온 벌레가 있잖아, 끔찍해. 징그러워! 흉측해! 라고 소리치던 선생님과, 정말이냐며 몰려들어서는 꺅, 소리를 지르던 아이들을 기억했다. 그때에 나는 내가 못봤지만 분명히 뭔가 있나보다, 생각했다. 그만큼 선생님이 혼을 내고 화를 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쭉 나는 주먹만한 벌레가 나온 아이였기 때문에. 그래서 아니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어. 소심하게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도 쭉, 사람들은 나를 싫어했다. 아이들이 특히 나를 정말로 많이 싫어했다. 나를 좋아해주는 건 언니오빠들의 친구거나, 조용한 언니들이거나 했다. 또는 따로 일대일로 만나는 선배들, 혹은 또래였다. 그들은 그렇다고 한들 모두와 함께 있을 때 나를 엄청나게 챙기고는 하지 않았다. 아주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게 아니면 그렇게 굴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변호하는 일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나와 어울리는 게 낙인찍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어느새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김민수는 몇 안되는 예외였다. 그러고보니 그 벌레 사건에 대해서 동조하였을 것이다. 김민수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와 어울렸다. 우리는 자주 노는 한 쌍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친구가 없어 김민수의 이야기만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사정을 이야기하는 건 몹쓸 짓으로 여겨졌고, 괜히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고 괜한 이야기를 한다며 나무람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고, 내가 입을 꾹 다물자 더 신이 난 그들이 히죽거리면서 거 봐, 그 애를 좋아하지? 너 걔를 좋아하는 거잖아, 라고 몰고 갔다. 

어쩌면 그 애가 나를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이 든 건 훗날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장난같은 몸싸움을 벌이다가 그 애가 내 팔을 붙들고 피아노 위로 눕힌 일, 그리고 기분 나쁘게 히죽 웃으면서 가랑이를 비볐던 일, 그게 기분 나빠서 무릎을 세워 그 애를 쳤더니 불알을 맞았다면서 괴로워하고, 그 애가 날 제압하는 동안 방관하던 반 애들은 내가 너무했다며 나무랬다. 나는 억울했지만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애는 내가 계속 고집을 피우면 늘 문방구에서 딱지를 사주었다. 그렇다고 퍽 귀여운 모양새는 아니었다. 보통 귀여운 모양새라 하면 여자애가 "나 이거 사주면 안될까? 힝. 사주면 좋을 것 같아..." 따위의 말을 해야 할 텐데 나는 "아, 제발. 형이라고 부를게. 형님. 천재. 너는 천재. 개천재. 그러니까 제발 딱지 좀 사줘."라고 말하는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언어를 구상하는 여자애였다. 그리고 김민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성가셔도 하고 귀찮다며 밀쳐내기도 했지만, 내게 종종 맛있는 것을 사주거나 딱지를 사주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바짝 그 애를 엎드려 모셨다. 걔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애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보인다는 것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를 그애와 엮으며 사귀라며 부추기는 사람도 없었고, 그 애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신 날 이후로 내게서 점점더 멀어져만 갔다. 나는 점점 더 그 애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전에는 뭔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놈이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여자애들은 그 애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놀이를 했다. 나는 그 애들이 하는 아이돌 놀이와 가족 놀이에 결코 낄 수 없었다.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반 애들에서 한두명을 빼고 전부 들어가게 되는 곳에서도 나는 결코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억울하지만 그저 기다렸다. 내가 나서서 해봤자 비웃음 당할 것이 뻔했으니까. 저 애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나를 배척하니까. 그럼에도 동시에 존중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학년의 아이들은 나를 대놓고 비웃고 한심하게 여겼으니까. 나는 그 당시 초등학교 전체에서 비웃음을 당하는 이상한 여자였다. 

졸업식에서마저도 그나마 나와 어울려주던 애가 돈을 빌려놓고 갚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만큼 나는 한심한 사람이었다. 어딜가든 비웃음밖에는 당하지 않았고, 어딜 가서든 이딴 취급밖에는 받지 못하겠지. 모두가 날 싫어하는데 그 이유조차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전부 체념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중학교로 들어가며 모든 것은 반전되었다. 나를 미워하고 은근히 배척하던 애들은 오히려 다수의 다른 초등학교 출신의 아이들에게 밀려서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고 다녔고, 어째서인지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나는 그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언니가 내 머리를 손질해줬고, 나는 언젠가부터 자주 웃게 되었다. 웃을 때 내 눈밒에 애굣살이 생긴다는 것을, 12살에 처음 알았다. 그만큼 오래 웃지 않았었다. 내가 웃기 시작하자 사람들도 나를 좋아해줬다. 나는 열심히 웃고 다녔다.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해주길 바라면서. 

그러나 모두가 날 좋아해준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중학교의 한 순간. 언젠가부터 찬찬히 멀어지기만 해가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 애와 아주 영영 단절된 사건이 있었다. 

영어 단어로 한 학생을 묘사하는 형용사들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다들 김민수를 놀려대며 단어를 말했다. 그때 나는 poor를 외쳤다. 불쌍한, 이란 뜻을 생각했지만 다들 나를 김민수에게 "가난하다"라고 말했다며 비난했다. 나는 김민수가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 애는 늘 나보다 돈이 많았고, 그래서 내게 뭔가를 사주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가난한 것은 나였지 그 애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애의 집안 사정이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 애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뒤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몰랐고, 무엇보다 내가 더 가난하다고, 이 학원에 있는 아이들 중 나보다 가난한 사람은 없다고 굳건히 믿었기에, 그들이 내게 비난의 어조를 던지고,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나갈 때. 분명히 나의 속사정을 알고 있을 김민수마저 나를 한심하게 보고 나갈 때. 나는 억울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 마음을 알 텐데. 너는 지금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위로받기 위해서,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으로 확정짓고 나가버렸어. 정정하지 않았어. 너만은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런 말들을 미리 골라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 쯤은 안다. 그 애가 내 맘을 뻔히 안다고 생각해도. 그 맘을 뻔히 알아도. 내심 신경쓰던 부분을 지적당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니까. 내가 그 말을 한 것 보다도, 내가 그말을 하자마자 모두들 "가난"이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하고 나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그 애는 다들 저를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그건 공격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건 아마 그들은 이미 그 애를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점에 큰 상처를 받았을 테다. 그래서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었을 테고. 그리고 사정을 모르고 해맑게 그런 말을 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만든 사람인 내가 정말로 미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이상하게 보고 미워하는 게 그 애에게는 더 편하고 나았을 것이다. 또래의 남자애들은 대다수 나를 아주 싫어했으니까. 그것에 편승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 뒤로 김민수가 아주 멀게 느껴졌고. 종종 길에서 마주쳐도 그 애는 나를 못 본 것마냥, 혹은 나를 버러지마냥 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애에게 잘못한 것들이 몇가지 있다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말할 기회가 없어 더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 일을 영영 해명하지 않았고 못했다. 그때 제대로 사과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의도라고 해도, 그 애가 받았을 상처는 진심이니까.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 헤아릴 수는 없었다. 나는 김민수가 가난하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했고 납득도 정말 되지 않았으니까. 그 애의 어디가 가난하다는 건지 나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생각해보면 그 당시 우리는 교복을 입고 학원에 갔기 때문에, 나의 가난이 가려졌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내가 가난을 비웃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늘상 입던 그 낡아빠진 옷들을 보면, 내가 가난을 비웃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을 텐데. 그렇기에 가난이 조소의 대상이 된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란 걸 알았을 텐데. 그리고 갑자기 밝아졌던 나는 정말로 가난을 생각치 못하게 만들었을 테다. 점점 성실해지려고 노력했던 나는 절대 가난과 연결되어 보이지 않았다. 가난 특유의 냉소주의와 침울함, 비굴함 혹은 분노와 폭력을 연상시키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갑자기 사방에서 환영받은 것이다. 교복을 입는 순간에는 나는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그런 평범한 아이가 외치는, "poor"라는 단어는 조롱의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몰랐고, 몰랐기 때문에 타인에게 폭력이 되었다. 

김민수는 아직도 나를 아주 싫어할 것이다. 그 외에 내가 그 애에게 여러 잘못을 저지른 게 있으니까. 내게 잘해줬던 순간들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한때는 가장 가까웠고 누구보다 속을 훤히 들여다봤는데. 지금은 그 애가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누구와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하나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이제는 회의감이 더 많이 들어서 옛 인연을 찾아보려는 수고조차 들이지 않는다. 그저 피곤하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가끔씩 딱지를 보거나 문구점을 지나가거나, 그 애와 함께 했던 게임들을 보면 그 애 생각이 난다. 그래도 해명 정도는 하고 싶은데, 라고 생각했다가. 그따위 해명을 위해서 굳이 사람을 다시 찾고 만나는 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뻔히 그런 의심을 받을 걸. "너 그 애 좋아해?" 같은 말. 관계에 진심이 되려는 태도는 전부 그런 식으로 치부되니까. 그런 스캔들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종 그 애를 생각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나는 그러려던 게 아니었어. 너도 어느정도 짐작했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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