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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25. 2024

이해하려 시작했다가 오해로 끝나는

끄적끄적

예전에 부모님 병환 문제를 얘기하는 어느 가족의 대화를 지켜본 적이 있었다.

해결책을 찾으려 얘기를 시작했는데 곁에서 지켜본 바,

형제들이 이야기하면 할수록 내용이 산으로 갔다.

서로 감정만 상한 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지.


또 한 번은 선배 부부의 대화를 지켜본 적이 있었다.

딸과 갈등을 겪는 아내 때문에 남편이 얘기를 꺼냈는데.

몇 마디 얘기가 오가는가 싶더니,

아내 쪽 감정이 울컥해서는 내가 딸보다 못하다는 말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남편은 그게 아니라, 만 연발하면서 아내의 감정 폭발에 질질 끌려다닐 뿐 도무지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사실 딸과의 문제로 가장 힘들어하는 건 아내였다.

그럼에도 억울하다는 감정이 앞서서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아 보였다.


흔한 일이다.

왜 우리는 사안을 논의하려 대화를 시작해서는 오해와 감정 폭발이라는 수렁에 처박히고 마는 걸까?



자기를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사실만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사안이 보이고.

사안의 내용을 먼저 파악해야 문제를 개선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들 첫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언성을 높여 오해를 키운 채 판을 망치고 만다.

내 입장, 내 이익, 내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에서 문제의 본질을 얘기하기는 참 어렵다.


또 말하는 방식의 문제도 있다.

시종일관 나 잘난 사람이야, 를 어필하려 들거나.

나는 잘못한 거 없어,라는 단단한 방어벽을 쌓고 있다거나.

절대 손해 볼 수 없지, 하는 피해의식이 앞서거나.

걸핏하면 빈정거리면서 너도 틀렸고, 너도 잘못이고 하며 심판자 위치에서 지적질만 해대면.

핏대 올릴 것 없이 자리를 뜨는 편이 낫다.


뭐가 잘못됐을까?

어디부터 고쳐야 하는 걸까?

일단 바르게 말하는 법,

남의 말 올바로 듣기부터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 할 게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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