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언제나 축제, 1918-1929>,
메리 매콜리프 지음, 최애리 옮김, 현암사
이 책은 19세기 후반기부터 1929년까지,
60년에 이르는 파리의 문화계를 다루는 지은이의 3부작 중 마지막 책이다.
당시 파리에서는 문화의 여러 방면에서 빛나는 성과가 이루어졌고,
파리는 재능 하나로 인생을 던진 가난한 예술가들이 대가로 성장하는 비옥한 터전이 되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등장하고 결코 평안하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언급되어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지만,
내용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내 성장기에 파리는 문화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까마득히 먼 성지로 느껴졌고.
낭만과 멋과 문화가 넘쳐흐르는 동경의 장소였다.
아마 1920년대에 파리로 몰려든 재능 있는 예술가 지망생들도 비슷한 기분이었으리라.
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지난 세기 문화의 각 방면,
즉 음악, 미술, 문학, 건축, 사진, 영화, 패션 등에 대한 폭넓은 상식이 필요하다.
예술가들과 문화의 조류를 대략적이라도 알고 있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19, 20세기 유럽의 정세도 아는 편이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 중 몇 가지를 요약하면.
지금 샤넬 브랜드는 꽤나 비싼 옷과 가방, 신발, 향수로 유명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타일에 약간씩의 변화는 있지만 특유의 원단과 기본적인 스타일은 지난 100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게 있어 지금 샤넬이라는 브랜드는,
돈 있음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구태의연한) 도구,
불편한 차림새의 구닥다리 디자인이라는 인식인데.
1920년대 샤넬이 디자인한 옷들은,
번거롭고 치렁치렁한 구시대의 옷을 결별하고
자유로운 몸놀림을 가능하게 해 준 혁신이었고.
값비싼 보석 대신 디자인이 있는 경쾌한 장신구를 제안했으며,
산뜻한 향기를 조향 하여 대량생산한,
여성들에게는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샤넬 브랜드는,
원래 샤넬이 시작한 디자인 정신은 사라지고 소비자의 호응에 기대어 이윤만 추구하는 그저 그런 장사꾼일 뿐인 거다.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지은이도 꽤나 분개하는 눈치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엄청 싫어했을 듯.
사실과 꾸며낸 얘기가 구분 안 되는 작가 특유의 허풍도 그렇지만.
첫 아내의 친구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첫 부인과의 혼인 무효를 주장하며 자기 아이까지 사생아로 몰아간 건, 분명히 선 넘었지?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의외로 고급 취향이어서,
과하게 좋은 집에 살면서 고급식당만 찾아다니느라 늘 돈에 쪼들렸다고 한다.
출판사마다 거절한 그의 난해한 소설을 출간해서 그를 유명 작가로 만들어준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창업자이며,
조이스로부터 수시로 돈을 요구받은 실비아 비치는 점잖게 그의 생활 방식을 지적했다.
"조이스식으로 사는 것은 그의 명성과 재능에는 어울렸지만 결코 그의 벌이에는 맞지 않았다."(294쪽)
깐깐해 보이는 작가의 인상과 생활이 달라서 좀 놀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