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 오종우 지음, 사람의 무늬,
나는 현실세계에서 주변 사람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나의 생각이나 관심사를 얘기해 봤자 벽에 대고 말하느니만 못하더라는 진실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책을 읽으니 느낀 것, 나누고 싶은 얘깃거리는 많지만,
그냥 나 혼자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말기로.
그래서 좋은 문학 비평서는 재미있다.
과도한 수사가 붙은 상업적 이해관계의 찬사가 아니라,
지은이가 깊이 감명받아 펜이 춤추는 비평서는,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다.
지금 소개하는 책이 그렇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세 작품과 작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이 책은,
웅변조의 문체로 내용이 빡빡해 집중해서 읽어야 하지만.
내가 좋게 읽은 작품들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
새로 깨우친 내용도 있으며.
무엇보다 이들 작가와 작품들에 관해 맞아, 맞아, 하면서 손뼉 치며 신나게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라,
마음이 후련해졌다.
내용이 많아서 책 중에
비극이라는 문학 장르에 관한 언급과
인간의 거짓에 관한 부분만 조금 소개하기로.
인간의 고귀한 정신은 어렵고 힘든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난다.
비극 장르는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 중심의 시대로 넘어가던 그때 그곳에서, 인간 행동의 가치와 척도가 부각되면서 비극이 탄생한다. 고된 난관과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한계에 봉착해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차라리 파멸의 길을 선택하여 인간의 고결함을 보여주는 것이 곧 비극의 정신이다. (49쪽)
현대에는 비극이 없다.
멜로나 공상 드라마에 약간의 고난이 가미될 뿐.
그리고 그 고난으로 몇 배의 세속적인 보상을 받게 되지.
내가 파멸할지언정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고결한 정신은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는 이런 말을 한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고 그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결국 자기 내면이나 자기 주위에 있는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며, 그러다 마침내 자신도 다른 사람도 존중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게 되면 사랑할 줄도 모르게 되고, 사랑이 없는 채로 마음을 달래고 기분을 풀려니 욕정과 저급한 음욕에 빠져들어 죄악의 소굴에서 완전히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이 모두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해대는 거짓말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33쪽)
이번 정권은 대통령 부부부터 검찰, 국무위원, 그쪽 당 국회의원 등 관련자들이 대놓고 해대는 거짓말과 타락한 욕망에 넌더리가 나는데.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이 문단이 그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로 읽혔다.
이래서 좋은 소설은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