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얘기는 아닌데,
혼자 살면서 누가 보지 않고 지적하지 않으면 생활이 방만해지기 쉽다.
아무 때나 자고 깨고,
아무렇게나 입고 먹고.
이불은 몸만 빠져나온 상태로 종일 똬리를 틀지,
부엌에는 설거지거리가 쌓이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나뒹군다.
출입문을 여는 순간 어지러운 풍경으로 기분이 상하는데.
그러면서도 신발은 아무렇게나 벗어버리고 가방은 내던진다.
독립하면서는 꿈에 부풀었다.
집은 이렇게 꾸며야지,
인테리어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집을, 방을 구하러 다니면서부터 와장창 꿈은 무너져 내리고,
내 몸 하나 들어갈 공간에 부담스러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갈등과 체념의 과정을 거쳐서...
만족스럽진 않으나 드디어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쉰나, 쉰나.
하지만. 째깍째깍,
공간은 곧 지출이다.
소유는 동시에 관리를 의미하지.
소복소복 방에는 먼지가 쌓이고,
만지지 않은 물건에도 때는 낀다.
일하느라 지쳐서 정리하고 청소할 힘이 없네.
집이 낡아서 치워도 티가 안 나.
보이는 풍경이 괴로우니 머릿속에서는 변명이 많아진다.
좀 지저분하면 어때 맘만 편하면 돼!
예, 그렇습니다.
초라한 공간은, 고갈된 에너지는, 금세 어질러지는 생활의 흔적은,
깔끔하고 예쁜 환경에 대한 의욕을 무너뜨리고.
되는대로 살다가 얼른 좋은 집으로 이사 가자,
지금 이곳에서의 탈출을 꿈꾸게 한다.
하지만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한들 이미 대충대충, 함부로 생활하는 나쁜 습관이 몸에 배었으니,
아무리 새집이고 좋은 집이라도 금방 초토화된다.
물건은 쌓이고, 쓰레기는 넘치고, 퀴퀴한 냄새가 집안을 감돈다.
너절한 환경은 알게 모르게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아침에 눈떠서 보는 첫 풍경이 지저분하고 어질러져 있다면 기분이 상쾌할까.
비록 당장 떠나고 싶은 누추한 방이라도
힘껏 치우고 청소해서 그나마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힘든 상황에서도 생활을 조금이라도 좋게 꾸려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팍팍 올라간다.
내가 머무는 자리에는 나의 자취가 밴다.
그곳이 내 집이든, 여행길 하룻밤 잠자리든, 하다못해 한 끼를 때운 식당에도, 차 한 잔의 카페에도.
우리는 머물다 간 흔적을 남긴다.
내 머문 자리는 말끔하게 치우고 떠나고 싶다.
마치 작은 새가 머물다 포르르 날아간 흔적처럼, 희미한 온기 말고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
하는 마음에서 자신이 머무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고 싶다는 의욕과 힘이 생기고,
그 의욕과 힘이 살림하는 방법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좋은 습관을 들이자.
일어나면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오지 말고 이불을 탁탁 털어서 작게 개거나 반듯하게 펴 놓는다.
현관에서 신발 벗을 때도 성급하게 벗어던지지 말고 가지런히 벗어 한편에 밀어놓는다.
옷장이나 옷걸이에서 입을 옷을 꺼낼 때 손으로 나머지 옷들을 정돈하고.
옷을 벗으면 툭툭 털어서 옷걸이에 제대로 걸자.
샤워를 하면 머리카락을 줍고 쓱쓱 물로 바닥을 청소하고.
세탁기에서 나온 옷들은 탁탁 털어서 손바닥으로 싹싹 펴셔 건조대에 널자.
그리 시간이 걸리거나 힘이 더 드는 동작도 아니다.
습관을 들이면 무의식적으로 몸이 알아서 한다.
따라서 일부러 방을 치우기 위해 노동해야 할 분량이 줄어든다.
나쁘고 게으른 습관은 일거리를 늘리고.
그래서 살림은 더, 더 힘들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씻는 편이라고 한다.
우리가 매일 샤워하게 된 건 오래되지 않은 습관이다.
습관이 되니 당연하게 몸이 알아서 샤워를 하는 거지,
결심을 해서 이행해야 하는 노동이 아니다.
살림도 마찬가지.
일단 좋은 습관을 들이면,
방을 치우고 선반을 정리하고 그릇을 씻고
바닥을 닦아 말끔하게 치우는 행위가,
굳이 몸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일정한 동작을 매일 반복적으로 하면 뇌에 회로가 형성된다고 한다.
방을 치우고 환경을 청결하게 하는 동작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좋은 습관만으로도 쉽게, 한결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