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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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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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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7 찐득찐득 쫀쫀

일러스트 : 교감 시도 by 최집사



사실 우리 모두는 찐빵이다. 인간인 척 회사도 가고 커피도 마시고 요리도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엔 각자 앙꼬를 품고 살아간다. 저기 저 하늘 위, 커다란 뚜껑이 열리면 콧털이 무성한 거인이 우리 중 하나를 고르게 될 것이다. (때에 따라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식탁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우유를 따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처럼 푹푹 찌는 날엔 앙꼬가 터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길 바란다. 자칫 품은 속을 들키는 날엔 찐빵으로써 신비감은 물 건너가게 된다. 속까지 고르게 잘 익어보겠다는 일념으로 가부좌를 틀고 움직이지 않을 것을 권한다. 머릿속으로 품고 싶은 앙꼬맛을 상상하며 수도자의 마음으로 이 계절을 보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덥고 습하더라도 찐빵으로써 품위와 자존심을 잊지 않기를 명심해 주길 바란다.



헛소리가 절로 나오는 날씨이다. 습도계를 볼 때마다 중학교 때 시험 점수가 떠올라 심란해진다. 마지못해 선풍기를 강풍으로 돌리니 이내 팔다리에 닭살이 돋는다. 비늘 같은 소름을 내려다보니 어제 끓인 영계백숙이 떠오른다. 에어컨을 켜도 그때뿐이다. 이런 날은 오히려 난방을 돌리는 게 낫다고 하여 거실에 히터를 돌리기로 했다.



이념적? 반대 진영에 놓인 둘(선풍기와 히터)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 봤다.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논제처럼 어느 쪽에 선다고 해결될 문제로 보이지 않아 끝까지 중립을 지켰다. 그렇게 열기와 바람이 만나 습기는 날아가고 보송보송해진 몸과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자연히 다른 계절을 살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둘을 끝내 서로를 팔로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으로 파프리카, 고추, 오이, 방토를 꺼내 간단히 컵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삶은 계란도 올리고 구운 버섯도 올리고 마지막 남은 토마토페스토도 싹싹 긁어 야무지게 뿌려 먹었다. 식탁에 앉을까 하다 룽지와 눈이 마주쳐 다시 싱크대로 돌아갔다. 그렇게 선 채로 라디오를 들으며 한 마리 배추 애벌레처럼 아침을 먹었다.



“와그작와그작” 고추 씹는 소리에 룽지가 다가와 한 입만을 외쳤다. 애써 눈을 피하고 혼신의 외면 연기을 했지만, 아이는 내 육신을 사다리 삼아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순간 재크와콩나무의 주인공이 된 거 같았다. 그 무분별한 추진력에 당황하는 사이, 방토 한 마리가 탈출을 감행했다. 범지구적 동체시력을 가진 녀석은 본능적으로 그 뒤를 쫓았다. 보란듯이 여태껏 연마한 드리블을 한껏 뽐냈다. 그렇게 둘이 친구가 되어 온 거실을 누볐고, 집사는 무사히 아침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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