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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Mar 15. 2021

[19C, 영국 낭만주의2] 늦겨울... 그러나 초봄

데이비드 콕스 <사막건너기>

데이비드 콕스 <crossing the sand>


  일년 24절기 나름마다 의미가 있습니다만 딱 이 맘 때는 이상하게 애매합니다. 뭐랄까요... 겨울 이라기엔 날씨가 따뜻하고 가볍게 옷차림을 하기엔 여전히 추운 날씨지요. 개인의 취향이긴 하지만 일년 중에 별로 달갑지 않은 계절이 요즘입니다. 날씨가 풀리는 듯 하지만 밖을 나서면 앙상한 나뭇가지만 눈에 보이고 눈이 내려도 금새 녹아 거뭇하지요. 이런 날씨 탓에 스키를 탈수도 없고 밖을 나서기도 좋지 않아 이 시기가 얼른 지나가길 바라는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늦봄, 늦여름, 늦가을이라는 단어는 어색하지 않은데 늦겨울이라는 말은 좀 생소합니다. 차라리 초봄이 더 익숙하지요. 사람들에게 지금 같은 계절은 얼른 지나가야 할... 혹은 딱히 기억에 남지 않을 시절일지 모르겠어요. 삶의 모든 순간은 중요하지만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갔으면...'하고 바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두커니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싸늘하면서 흐릿한 하늘을 바라보자니 영국의 풍경화가 생각 났습니다. 흐린 날씨가 많은 영국이지만 위대한 풍경화가가 많은 곳도 영국입니다. 존 커스터블, 윌리엄 터너 등이 있지요. 데이비드 콕스도 중요한 풍경화가 중 한 사람이었는데 수채화를 주로 그렸지만 훗날 유화로서도 성공했지요. 그는 평생 영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각지의 풍경을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묘사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황량한 듯 하면서 무언가 영감을 주는 그림으로 유명했습니다. 그 중 <사막 건너기>는 그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대표작이지요. 먹구름의 표현, 광활한 사막, 생기 있는 인물 채색이 돋보입니다.


  사실, 콕스 보다 유명한 풍경화가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유독 <사막 건너기>가 마음에 닿은 이유는 광활한 지역을 지나가는 여행자의 모습이 꼭 우리와 닮아서였습니다. 목적지를 향해가다 보면 폭풍을 마주치게 되고 또 긴 사막 길을 건너기도 합니다. 언젠가 끝이 나겠거니...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아직 남은 길은 요원하기만 하지요. 오아시스에 곧 닿을 것 같지만 아직은 먼 길.


  긴 겨울 동안 눈과 매서운 바람을 견디어내고 이제는 따스한 바람이 불법도 한데, 아직도 우리의 계절은 황량합니다. 따뜻한 봄 기운이 온다곤 하는데, 아직도 그늘 막은 매서운 바람이 불지요. 봄 이라기엔 봄이 아니고 겨울이라 하기엔 이 겨울이 지겹습니다.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요. 뭔가 애매한 시절이 있지요. 이도 저도 아닌 시간... 지금 당장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다림...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의 '파랑새'를 보면 한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 꿈속에서 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행복과 희망을 찾는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남매는 모자에 달린 다이아몬드를 돌리자 신비한 나라로 떠나지요. 추억의 나라에서 그리운 할머니도 만나고 꿈의 나라에서 수많은 파랑새도 만납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돌려 다른 나라로 향하자 전에 잡았던 파랑새는 전부 죽어 버립니다. 추억과 꿈 속에 머물던 행복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하기사, 불행할 때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큼 더 큰 슬픔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요.


  동화는 누구나 알듯이 꿈에서 깨어나자 집에 있던 산 비둘기가 파랑새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고 말해주지요. 건강의 기쁨, 봉사할 수 있음의 행복함, 가족의 사랑 모두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 입니다. 여기까지가 모두가 알고 있는 파랑새의 줄거리 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남매가 꿈 속에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행복이 행복이라는 걸 과연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동화 <파랑새>


  남매가 행복을 깨닫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불행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밤의 궁전에서 겪는 비밀, 병, 공포, 전쟁의 방을 통해 비참함을 알게 됩니다. 또한 행복의 궁전에 있더라도 모든 행복이 다 똑같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사치스러운 행복의 끝은 공허하니까요. 그들은 파랑새가 내 방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방황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요술쟁이 할머니가 남매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은 현실의 행복을 깨닫게 해준 게 아니라 신비한" 경험"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누구든 성장하지 않으면 귀가 열리지 않아서 듣지를 못하고, 눈이 뜨이지 않아서 보지 못합니다. 그 길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꼭 거쳐야 할 과정이 있었던 거지요. 한 단계씩 경험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남매는 파랑새를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현실로 돌아오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린 것이지요. 그들 손에 파랑새는 없지만 행복합니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옆집 노파의 딸이 몸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파랑새를 건네줍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남매는 더 이상 파랑새는 필요없으니까요.


  이 짧지만 의미 있는 동화는 건강해진 딸과 남매가 현실의 파랑새에게 먹이를 주려고 새장을 열자 날아가 버리는 것으로 끝 마칩니다. 저는 이 소설의 백미가 바로 이 마지막에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의 행복도 언젠가 떠난다는 것... 지금 내 손에 있는 파랑새도 늘 곁에 머물지 않습니다. 깨닫지는 못했지만 파랑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또 알아채는 순간 파랑새는 다시 날아갑니다. 남매는 이제 맹목적으로 '파란색을 가진 새'를 찾지는 않겠지요. 대신 진정한 의미의 '파랑새'를 찾아 각자의 길을 떠날 겁니다.


  우리 삶에 주어진 길에도 지름길은 없습니다. 비록 황량하고 먹구름이 가득할지라도 그 길 자체가 경험이고 성장입니다. 데이비드 콕스의 <사막건너기>처럼 말이지요. 보이시나요? 그림 속 폭풍우를 헤치고 하늘 향하는 파랑새들을 요. 그렇게 우리는 다시 현실의 파랑새를 찾아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막을 건너야 합니다. 이제 곧 긴긴 겨울을 끝내고 봄이 다가 옵니다. 그리고 우리도 여행을 떠나야겠지요. 행복을 찾아서. 희망을 찾아서.



[참고]

동화, 마태를링크 <파랑새>

사진, Mioomaroo insta. <봄날에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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